[헤럴드경제=최상현 기자]“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은 평생을 ‘늘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홀로 있을 때에도 사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언동을 삼간다’는 ‘계구신독(戒懼愼獨)’의 교훈을 좌우명으로 삼고 생활했다. 가인 선생이 조국과 사법부에 바쳐 온 뜨거운 충정은 이 나라 전체를 수호하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가인을 이렇게 추억했다.
13일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 법조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꼽는 가인 김병로(1888~1964)는 일제 강점기와 격동의 1950년대 법률가이자 정치인, 독립운동가로 청빈을 신조로 평생을 산 시대의 ’변호인‘이었다.
대법원은 이날 오전 가인 선생 50주기를 맞아 대법원 1층 대강당에서 법무부 장관과 전직 대법원장, 검찰총장, 가인의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인의 업적과 생애를 되돌아보는 추념식을 개최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념사를 통해 “가인 선생의 일생은 일제 지배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리나라의 가장 암울했던 시대에 오로지 민족을 살리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헌신한 삶 그 자체였다”며 “무엇보다도 몸소 법관으로서의 청렴하고 강직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신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교훈“이라고 했다.
가인은 평생 ‘지독하리 만큼’ 청렴했다. 가인이 보여준 전설같은 일화들은 그가 ‘대쪽 판사’, ’딸깍발이 법조인’의 모델이었음을 입증한다. 요즘과 같은 풍족한 시대의 ‘전관예우’나 ‘그랜저 검사’가 있다면, 가인의 불호령에 벌벌 떨지 않을 수 없는, 그만큼 진실되고 강직한 법조인이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가인(街人)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50주기 추념식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감동의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1950년대 어느 날 박봉에 견디지 못한 한 시골판사가 사표를 들고 대법원장이었던 가인을 찾아갔다. 가인은 “나도 죽을 먹고 있소. 조금만 참고 고생합시다”라고 했다. 부끄러움에 그 판사는 사표를 집어넣고 당장 물러났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가인은 절제와 청빈의 표상이었다. 법원의 물품을 구입할 때는 “다른 관청에서는 다 외제를 쓰는 데, 우리만 질 나쁜 국산을 쓴다”는 직원들의 푸념에 “나라를 찾은 지 얼마나 됐다고! 관청에서 국록을 먹는 우리가 국산품을 쓰지 않으면 우리 산업은 누가 키우냐”며 타이르기도 했다.
대법관에게 승용차를 주자는 건의에 “법관이란 집에서 법원에나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것인데, 차는 해서 무엇하느냐”며 거절하는 가 하면 손잡이가 부러져 반 토막이 난 도장을 대법원장 재임 기간 10여년 동안 그대로 사용했다. 비싼 양복 대신 두루마기를 입었고 직접 점심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들었다. 신간회 등 독립운동단체에 참여했고 김상옥 사건, 의열단 사건 등을 무료로 변호했다. 해방 후에는 민법, 형법 등 기본 법률의 초안을 담당해 사법부의 기틀을 마련했고 대법원장 재임기간 동안에는 정치 권력 등 외부의 압력과 간섭에 단호히 대처했다.
가인은 불의에 대항하는 상징이었다. 이승만 정부가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단행하자 “절차를 밟아 개정된 법률이라도 그 정신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면 국민은 입법부에 반성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당시 그를 눈엣가시로 여긴 이승만 대통령이 사표를 요구하자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응수한 일화는 후학들의 교훈으로 남아있다.
가인은 법관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서는 추상(秋霜)같이 엄격했다. 그는 1957년 대법원장 퇴임사에서는 ”정의를 위해 굶어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대법원장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재판 독립의 원칙은 선생의 결연한 의지와 곧은 기개가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며 “대법원장으로서 신임법관을 맞이할 때 마다 가인 선생께서 소중히 여긴 법관의 자세와 본분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돈과 명예를 쫒고, 불의에 쉽게 타협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후대 세상을 향해 가인은 이렇게 꾸짖는다.
“계구신독 하시오!’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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