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MBC ‘기황후’와 KBS ‘정도전’, 두 사극이 관심을 받고 있다. 21회까지 방송된 ‘기황후’는 시청률이 다시 20%대에 진입했고, 4회까지 방송된 ‘정도전’도 11% 정도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두 사극은 스타일이나 끌고가는 방식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기황후’는 상상을 가미한 사극이고, ‘정도전’은 여말선초 어지러운 시국을 종식시키고 새 시대를 열어젖힌 ‘정치가’ 정도전의 일대기를 다루는 정통사극이다.
그래서 전자는 사극을 감상하는 재미가 많이 강화됐고, ‘정도전’은 정도전의 국가건설과 개혁이 오늘날 대중의 관심사와 얼마나 부합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기황후’는 탄탄한 대본과 빠른 전개로 사극 보는 재미와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하지원(기승냥)과 고려왕이었던 주진모(왕유), 원나라 황제 타환(지창욱), 두 남자 간의 삼각관계가 큰 재미다. 단순히 사랑다툼으로는 사극을 끌고갈 수 없다. 그래서 승냥-왕유, 승냥-타환의 스토리텔링을 강화해 러브라인 색깔을 진하게 만들어 극을 끌고가는 중심동력으로 삼았다.
‘기황후’는 고려말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다 황후의 자리에 올라 고려인들을 착취하기도 했던 기승냥의 일대기인 만큼, 방송 전부터 역사왜곡의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원래 고려 충혜왕으로 등장하려던 주진모를 왕유라는 가공의 인물인 고려 왕으로 바꿨다. 그리하여 나라를 뺏긴 왕 주진모와 공녀로 원나라에 온 하지원이 다시 만나 새롭게 도모해야 한다는 애틋한 상황을 부여했다. 둘 사이의 사랑이 성숙되고 의젓해 보이는 이유다.
반면 기승냥과 타환은 ‘누나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연하남’으로서의 러브라인이다. 타환은 명목상으로는 원제국의 황제이나 모든 권한은 대승상 연철(전국환 분)이 쥐고 있어 ‘불쌍한 양’ 같은 존재다. 타환은 부친을 죽인 원수인 연철을 제거하려고 하지만, 아직 실력을 키우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아이 같고 미숙한 황제 지창욱과 하지원이 만나는 장면이 큰 재미를 주고 있다. 지창욱은 하지원이 궁녀로 있을 때, 기미상궁으로 자신의 곁에 두고 잔재미를 만든 바 있다. 이어 13일 방송된 수중 키스 신은 사극에서는 좀체 볼 수 없던 스릴과 서스펜스, 섹시함을 아울러 제공하는 흥미로운 그림이었다. 타환은 승철의 장남 당기세(김정현)를 피해 도망다니는 기승냥을 살리기 위해 욕조에 장미 잎을 가득 뿌리고 들어가 승냥을 물속에 숨겼다. 당기세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타환은 힘껏 숨을 들이마신 후 잠수해 기승냥의 입으로 자신의 숨을 전달했다. 이 장면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런 빠른 전개 속 잔재미가 ‘기황후’의 특징이라면, ‘정도전’은 보다 큰 그림을 그린다. ‘신돈’ ‘용의 눈물’ 등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은 여럿 있었다. 차이라면 정도전이 일개 조연으로 나온 다른 사극과는 달리, 정도전을 주연으로 등장시킨다.
따라서 정도전의 학문과 사상, 실천방식, 즉 부패한 고려의 권문세족을 없애고 새로운 성리학 질서에 바탕한 조선왕조를 열었던 과정을 추적한다. 정도전은 단순한 혁명가가 아니라 치밀한 기획과 비전을 갖고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 설계자이자 창조자였다.
유학생 정도전은 힘없는 고려의 공민왕에게 사회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공민왕이 수하에 의해 죽임을 당해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다. 이 와중에 권모술수에 능한 이인임(박영규)이 실권을 잡은 상태다. ‘기황후’에서 주진모와 하지원의 극복 대상이 ‘연철’이라면, 현재 정도전의 극복 대상은 ‘이인임’이다.
정도전은 아직 방송되지 않았지만,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 등을 통해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기반을 확립하고 한양 천도, 사병혁파와 같은 개혁을 추진해 조선왕조의 기틀을 다져나간다. 비록 ‘과전법’이라는 타협적인 형태였지만, 고려 후기 문란했던 토지제도, 구지배세력의 물질적 기반을 개혁해 백성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킨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도전도 왕권강화론자인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인임에 의해 귀양 가 야인으로 지내야 했던 정도전은 무장 이성계를 만나 역성혁명을 기획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태종에 의해 역적의 오명을 쓰고 죽었다. 이 인물이 주는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 ‘정도전’의 정현민 작가는 “지금의 시대가 난세라면 난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도전’을 통해 꿈을 가지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갈수록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요즘, 정도전에게서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진짜 정치를 볼 수 있는가가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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