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올드보이’ 국내 개봉…한국판엔 못미쳐
‘오대수’ 대신 ‘조 두셋’(조시 브롤린 분)이 먹은 것은 ‘식어빠진 군만두맛’이었다. 전통식인지, 퓨전식인지 맛도 도통 애매했다. ‘똑바로 살아라’ ‘버스를 타라’ ‘맬컴 X’ ‘25시’ 등 내로라하는 작품들을 연출한 미국 영화의 ‘거장’급 감독이지만, 스파이크 리 감독은 후배인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리메이크하는 데에 힘이 부쳤다. 원작의 ‘고갱이’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와 자신만의 독창적인 재해석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영화는 길을 잃었다. 먼저 선보인 미국에서 혹평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박 감독의 걸작으로 꼽히는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사진>가 지난해 11월 미국 개봉에 이어 국내에서도 16일부터 상영에 들어간다.
전 세계에 걸친 원작 영화 열혈팬들의 관심 속에 뚜껑을 연 스파이크 리 감독 버전의 작품은 ‘올드보이’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프로젝트에서 미네기시 노부야키의 일본 만화 원작에 더 충실할지도 모른다는 소문과는 달리, 박 감독의 영화를 거의 완전한 뼈대로 했다. 스토리와 주요 장면, 일부 대사까지 원작 영화에 흡사했다. 하지만 원작이 가진 신경을 거스를 정도로 터질 듯한 긴장감과 일순 스크린을 뒤흔드는 돌발적인 유머, 압축과 이완의 뛰어난 리듬감, 기하학적인 화면 구도 및 강렬한 색감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논란과 충격의 극적 동기는 약간의 변형과 함께 원작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음에도 전반적으로는 산만하고 늘어지는 느낌이 더 짙었다. 재연하고자 했던 원작 영화의 파격성이 리메이크 영화에 깃든 ‘할리우드식 전형적인 화법 및 정서’와는 어긋난 결과가 아닐까.
최민식이 맡았던 ‘오대수’는 조시 브롤린이 맡은 ‘조 두셋’이라는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원작보다 더 속물적이고 방탕하며 주책없는 남자로 묘사된다. 광고회사 직원인데, 의뢰인 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해놓고 상대 여인에게 추근거리는 모습도 영화 속에 등장한다. 아내와는 사이가 좋지 않고, 하필 생일을 맞은 세 살 난 딸아이에게는 전혀 무심한 인물. 영업에 실패하고 술에 잔뜩 취해 거리를 헤매던 중 조 두셋은 어느 여인에게 납치된다. 술에서 깨어 보니 사방이 막힌 감금방. 울부짖기도 하고 소리쳐 보기도 하며 문구멍을 통해 넣어진 술에 취해도 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방 안의 TV를 통해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는 장면들이 등장하고, 그 사이에 9ㆍ11 테러도 발생한다. 자신의 아내가 살해되고, 딸이 입양됐음을 알게 되는 것도 TV를 통해서다. 조 두셋은 복수의 일념하에 감금 햇수를 몸에 새기며 탈출의 그날만을 꿈꾼다. 감금 20년 후, 방 안으로 들어온 가스에 조 두셋은 정신을 잃는다. 눈을 떠 보니 바깥세상이다.
조 두셋이 동창인 친구의 도움을 받고, 자신에게 유난히 호의적인 수수께끼의 여인(엘리자베스 올슨)의 운명의 조력자 삼아 감금한 자의 정체를 추적해가는 과정은 원작 올드보이의 동선과 닮아 있다. 20년 동안 군만두만을 먹으며 감금방에서 버틴다는 설정도 같다. 하지만 바깥세상으로 나온 조 두셋이 TV를 통해 성장한 딸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원작과는 상이하다. 결말 부분도 원작과는 다른 ‘반전’을 품고 있다. 조시 브롤린의 연기는 그 자체로는 흠잡을 데 없지만 원작의 최민식이 차가움과 뜨거움을 오가며 보여줬던 광기 어린 에너지엔 못 미친다. 다만 원작에선 오달수가 했던 역할의 새뮤얼 잭슨은 색다른 관람 재미를 준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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