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공부서 함께 근무…이희범 경총 회장이 말하는 권용원
권용원 키움증권 대표를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권 대표가 기술고시를 거쳐 상공부 사무관이 되면서부터다. 내가 1990년대 초 전자공업국장으로 부임하자 그는 우리나라 통신산업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꾸는 핵심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역대 국장은 그가 국전체에서 핵심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보나 당시 잘나가는 공무원이 선호하는 해외유학도 보내지 않았다. 일분 일초라도 없으면 업무가 마비됐기 때문이다.
내가 차관보로 승진하면서 권 대표도 서기관으로 승진해 기술정책을 담당했다. 하루는 청와대 업무보고서를 만드는데 수많은 엘리트 사무관이 작품을 만들어 올렸지만 장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드디어 서기관이던 권 대표가 차출됐다. 그가 밤새 만든 보고서는 장관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장관의 혁신인사에 따라 남보다 일찍 과장으로 발탁됐다. 모두가 부러워했고 머지않아 국장과 차관보는 물론 차관급 자리까지 보이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날 돌연 사표를 던지고 당시로서는이름도 생소한 다우기술 전략경영실장 겸 부사장이란 명함을 들고 나타났다. 그의 과감하면서도무모한 도전은 상공부에서 소위 잘나가는 과장들이 민간기업으로 러시를 이루는 계기를 만들었다.
다우그룹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온라인 비즈니스인 키움닷컴증권을 설립했고, 얼마후 그는 대표이사가 됐다. 키움증권은 날개에 돛을 단듯 성장세를 이어갔다. 다우그룹은 키움인베스트먼트 키움자산운용 키움저축은행으로 영역을 넓혀나갔고, 인도네시아 등 해외시장으로 글로벌화를 촉진했다.
권 사장은 외모와 같이 경영철학에서도‘ 야무지고 강한 회사’를 만드는 선봉장이 됐다. 그가‘ 대한민국 CEO리더십 대상’‘ 올해의 CEO상’ 등을 휩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전자공학도인 그가 본래의 길로 갔으면 아마 전 세계가 놀랄 첨단기술을 개발해 노벨상 후보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금융인이 된 것은 개인적으로 아깝기도 하지만 혁신을 실천하는 첨단금융인으로서는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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