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뒷다리가 짧은 狼 상대는 앞다리가 짧은 狽 낭과 패는 혼자서는 굶어죽을 뿐 몸의 반 내놓고 서로 껴안아야 멀리 또 빨리 달릴 수 있어

‘낭(狼)’은 이리입니다. ‘패(狽)’도 이리입니다.

낭은 앞다리가 길고 용맹하지만 뒷다리가 너무 짧습니다. 사냥은 언감생심입니다. 그저 힘만 좋을 뿐입니다. 패는 뒷다리가 길고 지모가 뛰어나지만 앞다리가 거의 없습니다. 덫은 놓을 수 있지만 뛰는 놈은 잡을 수 없습니다. 머리만 좋을 뿐입니다.

낭과 패는 그래서 혼자라면 굶어 죽기 딱 알맞습니다. 서로 잘난 척하며 등을 돌리면 낭패를 겪습니다. 낭의 힘과 긴 앞다리와, 패의 머리와 긴 뒷다리를 잘 조합하면 숲 속의 강자가 됩니다. 낭이 자기 몸의 절반을 내놓고 패가 낭의 등을 껴안으면 낭패는 멀리 빨리 달릴 수 있게 됩니다.

낭과 패의 갈등은 그렇게 참 쉽게 해결됩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누구라도 금방 짜낼 수 있는 지혜입니다. 각자 떠들고 서로 핍박하면서 세월을 마냥 보내면 길바닥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끼리만이라면 다소 시간이 걸려도 그만이지만 세계가 한 덩어리로 돌아가고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선두 그룹에 끼어 있는 지금의 세상이라면 사뭇 다릅니다.

갈등의 역사는 깁니다. 인류의 역사이며, 발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생각이 숨어 있는 문제들을 끄집어냈고 서로 다른 생각과 다투고 부딪치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향했습니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창조혁명, 소셜혁명, 스마트혁명도 심한 사회 갈등과 정치 갈등 속에 이뤄졌습니다.

갈등 없이 이뤄진 새로운 세상은 없습니다. 갈등은 도전과 변화의 시작이고, 희망의 징검다리이기 때문입니다.

갈등을 억압하고 기득권층의 목소리만 키우며 자만에 빠졌던 제국들은 하나같이 다 망했습니다. 겉과 달리 속은 곪았기 때문입니다. 긴 시간 세계 전자업계의 신(神)이라 불렸던 일본의 소니나 핀란드의 노키아도 숨어 있는 갈등을 방관한 채 평온한 성공에 머물러 있다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갈등은 힘입니다. 피하면 변화도 없습니다. 관리의 대상일 뿐이지, 없앨 대상은 아니며 두려움의 대상도 아닙니다.

느리더라도 대화를 통해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막무가내식으로 단숨에 이기려고 들면 쌓이고 또 쌓인 갈등이 조직을, 사회를, 나라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오늘 우리의 대한민국이 그렇습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 때문인가요. 다들 목소리 키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길바닥이고, 행정관서고, 의사당이고 가리지 않습니다. 정치도, 업계도, 단체도 온통 난리입니다. 시끄러운 소음 탓에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생각의 골이 깊었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싶습니다.

갈등은 늘 있었습니다. 갈등의 끝도 늘 있었습니다. 옛날엔(옛날이라고 해봤자 10년, 20년, 30년 전이지만) 더러 피할 곳이 있었고 낯붉히고 싸우다가도 돌아서면 등 두드리며 손을 잡았습니다. 야당은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고, 여당은 어떻게든 끌어안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조금씩은 양보하고 포용해야 산다는 것을 알았기에 같은 직종끼리라면 한바탕 붙었다가도 다른 자리에선 웃었습니다.

조급하게 이루려다 여유와 낭만, 사색과 ‘천천히’를 잃어버린 탓일까요. 중도는 어느새 박쥐가 되고 경청이나 배려는 우유부단 아니면 회색이 돼버렸습니다. 콩으로 메주를 쑤는 것은 누가 말해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아니라고 합니다. ‘네 편 아니면 내 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찍어누르거나 목숨 걸고 쟁취하려다 보니 싸움터가 처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야 오래간다고 합니다. 낭과 패는 혼자 가면 빨리 가지도 못하고 초저녁에 죽고 맙니다. 함께 가야 낭패를 보지 않고 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낭이면 상대는 패고, 내가 패면 상대는 낭입니다.

새날입니다. 온전히 새로 생긴 새날은 아닙니다. 어제의 역사가 있어 오늘이 새롭습니다. 어제는 흐르지만 지나가고 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곁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60년 전, 120년 전 갑오년의 역사가 내일이 됩니다.

다 짊어지면 고행입니다. 내려놓으면 의외로 편안합니다. 놓아야 서로 등진 갈등의 밤을 보낼 수 있습니다. 새해 새 빛에 부끄럽지 않게.

이영만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