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태 장기화…자본시장 황폐화

예탁금 한달만에 4조 급감 하루평균 거래대금 최저수준 정치권 옮겨붙어 혼란가중 우려

“3900억원 규모의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사태 때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파장이 일었습니까. 2조원에 달하는 동양 사태의 후폭풍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15일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이같이 탄식했다. 사상 최악의 금융사태로 번지고 있는 ‘동양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의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자본시장 황폐화가 가시화되는 모습이다.

▶속속 나타나는 부정적인 징조들=자본시장 황폐화는 시장지표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고객예탁금은 지난 11일 15조3141억원으로 떨어지며 2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동양사태 이전 19조원에 달하던 예탁금이 한 달여 만에 4조원 이상 급감한 것이다. 3분기 주식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5조6903억원으로 2007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현재 시장에서는 외국인만 있을 뿐이다.

투자자 속속 이탈…시장불신 극에 달했다

회사채시장은 더 심각하다. 발행시장에서는 동부제철만이 이달 4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을 뿐 비우량 등급 회사채 발행이 사실상 중단됐다. 유통시장에서도 지난달 마지막 주 9525억원에 달했던 회사채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이달 첫 째주 6522억원으로 급감한 데 이어 지난주에는 5214억원으로 더 줄었다. 파생상품시장에서도 주가연계증권(ELS) 발행액이 2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고, 일부 증권사들은 파생상품 사업을 아예 접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기업공개(IPO) 분야도 침체가 계속되는 모습이다. IPO시장에서 상장기업은 2010년 22개에서 올해 5개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상장을 적극 검토하던 LG실트론, SK루브리컨츠, 현대로지스틱스, 미래에셋생명 등은 올해 줄줄이 상장을 연기했다.

겉으로 드러난 시장지표 악화보다는 투자자들의 불신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소형 증권사의 영업직원은 “동양사태 이후 영업점을 찾는 고객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면서 “좋은 상품을 추천해도 부정적인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투자자 속속 이탈…시장불신 극에 달했다
예탁금 한달만에 4조 급감 하루평균 거래대금 최저수준 정치권 옮겨붙어 혼란가중 우려

▶정치권 가세에 혼란 가중 우려…금융규제 완화는 요원=동양사태는 정치권까지 옮겨 붙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 경영진의 ‘모럴해저드’와 금융당국의 부실감독 책임을 집중 추궁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동양사태의 해결사를 자임하고 나서면서 자칫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경우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당시 정치권은 총선을 앞두고 무리한 구제법안을 추진하면서 피해자 구제와 여론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이번 동양사태에서도 정치권은 집단피해구제기금 도입과 금산분리법안 입법 등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자본시장 규제 완화 정책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당초 이달 말 ‘금융비전’ 발표를 통해 증권업계의 불합리한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 동양사태로 발표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커졌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양대근 기자/bigroot@heraldcorp.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