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관동별곡 8백리길

소나무 숲길따라 걷다보면 고즈넉한 화진포가 한 눈에 송림·죽도 어우러진 송지호 둘레길은 철새들의 ‘낙원’

“강호(江湖)에 병이 깊어 죽림(竹林)에 누웠더니

관동(關東) 팔백 리에 방면(관찰사)을 맡기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갈수록 망극하다.

맑거든 좋지나 말거나 좋거든 맑지 말거나

저 기운 흩어내어 인걸을 만들고자

형용도 끝이 없고 태세도 많구나.”

<정철 ‘관동별곡’ 中>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된 송강 정철은 내금강산과 동해안의 관동팔경을 유람하면서 아름답게 펼쳐진 비경에 대한 감탄을 ‘관동별곡’에 담았다. 그는 “맑거든 좋지를 말거나, 좋거든 맑지나 말던가”라고 말할 정도로 티 없이 맑은 풍경을 벗 삼아 심신을 정화하고 이를 선정(善政)에의 포부로 승화시켰다.

자동차 경적소리의 채근도 없다. 새삼 하늘을 마주할 여유도 갖는다. 매캐한 매연 대신 울창한 나무숲이 내뿜는 자연의 기운을 마신다. 회색빛 도시를 탈출해 물감으로 물들인 듯 총천연색의 산과 들을 누비다 보면 어느새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송강 정철이 그랬던 것처럼 대자연이 병풍처럼 휘두른 길 위에서 우리는 새삼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살아갈 길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송강 정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가 바라봤던 관동팔경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강원도 고성 갈래길 곳곳을 걷다 보면 관동팔경을 만날 수 있다. 그가 남긴 관동별곡의 구절구절이 가슴속에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진다.

동해안 최북단 통일전망대에서 고성군과 속초시의 경계인 용촌리까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한 ‘해파랑길’이 펼쳐져 있다. 70.7㎞에 이르는 이 해안길은 일명 ‘관동별곡 8백리길’이라 불린다. 총 13구간으로 나뉘는 이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다면 총 20시간 이상 걸리지만 그중에서도 풍광이 아름다운 몇 곳을 정해 여행한다면 주말에도 충분히 걷기여행을 즐길 수 있다. 특히 강원도 고성군은 관내의 아름다운 길 9곳을 ‘고성 갈래길 9경’으로 조성, 여행객들에게 다양한 걷기 트랙을 제공하고 있다.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주요 길을 소개한다.

해당화와 송림(松林)이 어우러진 ‘화진포 둘레길’ ‘화진포 둘레길’은 절경을 뽐내는 대표적인 장소다. ‘화진포’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화진포 해양박물관’은 물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별장’ ‘이기붕 전 부통령의 별장’ ‘화진포의 성(일명 김일성 별장)’이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바다 내음을 맡으며 산길을 따라 ‘화진포의 성’에 오르면 한쪽으로는 푸른 숲이, 다른 한쪽으로는 넘실대는 푸른 파도가 장관을 이룬다. 특히 국내 최대의 석호로, 그 둘레만 16㎞에 이르는 화진포 해변은 여름철 피서지로도 유명하다. 최근에 문을 연 ‘화진포 생태박물관’은 등산 동호회원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화진포 둘레길에서 이어지는 ‘거진항’ 산림욕을 하며 화진포 소나무 숲길을 따라 응봉 능선길을 걸으면 동해안 최북단의 미항으로 알려진 ‘거진항’에 이른다. 이 길에서는 북녘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 화진포 호수 또한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지금은 기후 변화에 따른 바닷물의 온난화로 냉수대에서 서식하는 명태를 찾기 어려워졌지만 거진항은 한때 우리나라 명태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해마다 ‘명태축제’가 열린다.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북방식 전통가옥을 원형 그대로 간직한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한과 만들기나 떡메치기 등을 체험할 수 있어 전통의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다.

새들의 안식처 ‘송지호 둘레길’ ‘송지호’는 송림과 죽도가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10.7㎞의 ‘송지호 둘레길’은 평탄한 호변길로 2시간36분 정도 소요된다. 송지호 산소(酸素)길을 따라 걸으면 ‘철새 관망타워’에 다다른다. 20만평 규모에 이르는 이곳은 천연기념물 201호인 고니를 비롯한 철새들의 낙원이다. 갖가지 새들의 생태를 관망할 수 있는 장소로, 포토그래퍼들이 멋진 풍경 한 자락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철새 관망타워에서 송지호 북쪽 산책로를 따라 풍경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새 ‘오호항’에 도착한다.

건봉사 ‘등공대 해탈의 길’ 신라 법흥왕 때 ‘원각사’라는 이름을 창건된 ‘건봉사’는 전국 4대 사찰 중 하나다. 부처님의 진신 치아 사리가 봉인돼 있고, 무지개 모양의 ‘능파교’ ‘불문’ 등이 문화재로 남아 있다. 건봉사는 6ㆍ25 전쟁 때 불타 없어져 현재 재건 중이지만 인근에 자리한 ‘등공대 해탈의 길’을 걷노라면 바쁘게 돌아가는 속세를 벗어나 근심을 지울 수 있다.

황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