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가 최근 빈번하게 국내 곳곳에 출몰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웹 기반의 백과사전인 위키 백과에 따르면, 욱일기는 일본 국기의 빨간색 동그라미(붉은 태양)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붉은 햇살(욱광ㆍ旭光)을 그린 깃발입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구(舊) 일본 제국 시대에 사용된 일본군의 군기(軍旗)이자 현재 일본 자위대의 깃발입니다. 독일 나치의 갈고리 십자가 모양의 ‘하켄크로이츠’와 유사한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당사국으로서는 부끄러워해야 할 전범기인 셈입니다.
그런데 독일과 달리 일본 일각에선 욱일기를 자랑처럼 드러내고 다닙니다.
지난 7월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선 2013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축구 경기로 한국과 일본이 대결을 벌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한 일본 팬은 전반 시작 후 거대한 욱일기를 동측 관중석 2층에서 약 3분간 흔들었습니다. 이후 보안요원의 제재로 내리긴 했지만, 이후엔 거대 일장기를 대신 흔들었습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일본 팬이 욱일기를 흔든 건 이번 뿐이 아닙니다. 지난해 8월 열린 2012 FIFA(국제축구연맹) U-20 여자 월드컵 한국과 일본의 8강전, 올해 4월에 열린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전북 현대와 우라와 레즈의 경기에서도 욱일기가 어김없이 등장했었습니다.
문제는 전범기인 욱일기가 국내에서조차 감각적인 문양 혹은 패션의 아이콘처럼 오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올 4월 강원 원주의 한 사립대 학생들은 욱일기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트위터 등 온라인에선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배경으로 뒷짐을 지고 있는 학생을 가운데 두고 7명이 독일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문제의 사진이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사진 속 학생들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고, 하단에는 전공 학부로 추정되는 ‘DESIGN’이라는 로고가 박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 군국주의의 직접적 피해 당사국의 학생들 행동이어서 그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아이돌 그룹도 한 차례 곤욕을 치뤘습니다. 아이돌 그룹인 빅스 멤버들은 지난해 유튜브를 통해 ‘빅스TV’라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멤버들이 14화에서 욱일기를 배경으로 일본 제익이라는 의미의 ‘日本一(일본일)’이라는 문구가 부착된 모자를 착용했기 때문입니다.
또 지난 7월엔 ‘안산밸리록페스티벌’에 참가한 미국 일레트로닉 뮤지션 스크릴렉스가 공연하는 도중, 뒤에 배치된 화면에서 일본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영상이 약 3초간 나와 일부 관객들이 불쾌함을 표하며 자리를 떠난 일도 있었습니다. 온라인 상에서는 “스크릴렉스가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는 것으로 유명한데 욱일기의 의미를 모를 리가 있느냐”는 의견과 “욱일기 배경이 나온 타이밍에 불렀던 곡 제목이 ‘Kyoto’였다. 뒤이어 태극기 퍼포먼스도 있었으니 욱일기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것 같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처럼 하켄크로이츠와 달리 욱일기가 여전히 판을 치며 살아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이원우 박사는 일본이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음을 지적합니다.
“전후 일본과 독일이 걸어온 길이 다릅니다. 독일의 경우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가 무력으로 말소됐습니다. 법률로 나치를 선전하면 처벌받게 됐죠. 하지만 일본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맥아더를 사령관으로 하는 연합군이 들어온 초기엔 ‘전범국에 민주와, 비군사화를 한다’고 했는데, 마침 중국이 공산화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으로선 일본의 공산화를 우려해 우선순위를 바꿀 수밖에 없었죠. 그러면서 일본은 전범에 대한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았고 일본은 급격하게 우익화 합니다. 전쟁의 상징인 천황이 면죄부를 받기도 했죠. 즉, 지금에서도 욱일기가 사용되는 이유는 전쟁 범죄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결과입니다. 정치인의 망언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사실이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있습니다. 당시 서양에선 선진국이 아닌 동양에 대해 세세하게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물론 모든 일본인들이 욱일기를 숭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박삼헌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의 말입니다.
“지금보다 오히려 전후 일본에서 욱일기가 금기시되고 터부시 됐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스포츠와 관련된 ‘네오 내셔널리즘’이 90년대 이후 일본 젊은이들에게 많이 보급이 되고 자신의 상징으로서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한국의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와 비슷하게, 경제적으로 불안으로 일본 젊은이들이 불만 표출의 방식으로 네오 내셔널리즘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물론 대다수가 그렇진 않습니다. 일본인들도 욱일기가 전쟁과 관련된 깃발이라는 건 다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야스쿠니 신사에서 군복을 입고 욱일기를 들고 시위하는 할어버지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선도 곱지는 않아요. 전쟁을 실제로 몸소 겪었거나 전후 교육을 받았던 40~50대가 오히려 일본 내에서도 욱일기에 대한 반발감이 큽니다.”
욱일기에 대한 한 가지 대안으로 성신여대의 서경덕 교수는 홍보 강화를 제안했습니다.
“서양에 대해서는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홍보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유럽 지역의 유학생들, 네티즌들이 제보를 많이 합니다. 유럽 내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디자인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서양의 욱일기 디자인 사용은 그들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지, 나치 깃발인 것과 같은 것을 알고는 사용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국제적인 홍보가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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