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건 한 시간에 3분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한 시간 내내 멋있는 것만 보여주면 지루하지 않을까요?"
배우 오지호의 연기관이다. '멋있는 건 한 시간에 3분이면 족하다'. 데뷔 초 그는 흠잡을 데 없는 뚜렷한 이목구비로 대중들의 시선을 모았다. 연기력이나 열정보다 눈에 띄는 외모와 훤칠한 키, 탄탄한 근육질 몸매로 더 주목을 받았다.
'다비드'라고 불릴 정도로 잘난 외모가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장점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때론 '찌질'하게, 때로는 '난폭'하게 또 '불쌍'하게 캐릭터의 맞춤옷을 입어왔다. 그렇게 15년이 흐른 지금 오지호는 '연기 잘 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KBS2 종영된 드라마 '직장의 신'을 마친 오지호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뚜렷한 이목구비, 웃을 때 들어가는 보조개는 여전했지만 또 하나의 작품을 통해 한층 성장한 듯 보였다.
◆ 장규직 Vs 오지호
오지호는 극중 장규직 역을 맡았다. 회사 와이장(Y-JANG)의 영업팀 팀장으로 상사에게는 예쁨 받는 부하직원, 그러나 평사원들에게는 악마같은 존재였다. 제작발표회 당시 이 드라마에는 악역이 없다고 선언한 오지호 역시 종영 후엔 "악역이 있다면 장규직"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우선 작품들어가기 전에 '직장의 신'에는 악역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회사 안에서 장규직 캐릭터는 군대의 상병 같은 역할이에요. 그가 독하지 않으면, 상관관계가 유지 되지 않을테니까요. 그래서 남들보다 화도 많이 내고 못된 짓도 했죠. 부하직원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그만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욕먹을 각오는 했다.
"보는 이들에게 욕을 들을 수 있지만 과감해야 표현해야만 하죠. 그렇지 않으면 장규직이라는 캐릭터가 살아남지 못해요. 너무 강하게 하면 미움 받지 않을까, 살짝 고민한 것도 사실이에요. 특히 임신한 박봉희(이미도 분) 계약직에게 구박하는 장면은 '욕 먹지 않을까' 고민을 했어요. 이후에 포장마차 장면에서 그의 애환 역시 잘 표현이 돼서 다행이었죠.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서 특별한 것은 없고 진실 되게 하는 것밖엔 없는 것 같아요"
장규직이 늘 나빴던 건 아니었다. 임신한 계약직 여성을 위해 미스김(김혜수 분)과의 씨름 대결에서 일부러 져줬다. 그리고 계약직 정주리(정유미 분)의 아이디어를 마치 자신의 것 마냥 임원들에게 프레젠테이션 하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씨름을 져주는 장면에선 "디테일을 좀 더 살렸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애정을 품으면서도 프레젠테이션 장면을 떠올리면서는 갸우뚱하는 그다.
"제가 장규직이라면, 프레젠테이션 당시 뛰쳐나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극적인 반전과 과거 아픔을 안고 있는 주인공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신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저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직장의 신'에는 전혀 상반되는 상사로 장규직, 그리고 무정한(이희준 분)이 있다. 180도 다른 성격의 소유자인 두 사람을 통해 극적 재미를 더한 것.
그렇다면, 오지호가 생각하는 상사는 무얼까.
"개인적으로 무정한 보단 장규직이 낫다고 생각해요.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조언, 충고 등 뭔가 독설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게 필요한 사람은 장규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약 2개월 간 장규직으로 산 오지호는 "꼭 이 작품만이 아니더라도 배우 일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번에는 회사원의 애환 등을 알게 됐다"면서 지금을 살아가는 회사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를 남겼다.
"회사원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이 사람들의 목표, 꿈이 회사원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과연 이들은 과장과 부장이 되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을까? 친동생이 큰 기업에서 5년 간 일을 하다가 박차고 나와서 세탁업을 하고 싶다고 사업을 시작했어요. 동생이 직장을 다니는 5년 동안 얻은 건 신경성 위염과 디스크였죠. 그래서 전 다른 꿈이 있는 회사원들에게 '박차고 나가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꿈이 있다면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해보지 않고 극중 고과장처럼 지내는 것보다 꿈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오지호 Vs 김혜수
'직장의 신'이 방영 전부터 주목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단연 김혜수의 출연이다. 오랜만에 안방극장 복귀이거니와 미스김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과연 그가 어떻게 표현해낼지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베일을 벗은 결과, 대성공이었다. 김혜수는 미스김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그리고 장규직, 오지호와의 합도 좋았다. 연기 호흡은 처음인 두 사람이지만, 각자의 캐릭터를 살리며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다들 느끼시겠지만, 김혜수가 옆에 오면 자연스럽게 몸동작이 겸손해져요(웃음). 누님만의 후광이 있어요. 촬영하면서 느낀 것은 좋은 배우라는 거예요. 모두 모니터링을 하면서 배우들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세요.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김혜수'라는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거예요"
벽을 허문 오지호는 '애드리브'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원래 애드리브를 잘 하지 않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많이 시도했어요. 처음엔 조금 걱정을 했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누님도 재미있어 해 주시고 스태프들도 기대를 해주셔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 혜수 누님은 '연기 진짜 좋아'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으로 좋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극중에선 장규직을 연기했지만, 그 역시 미스김의 대단한 팬이었다.
"대본을 처음 접하고 높은 시청률이 나올 거라고 확신을 했어요. 미스김 때문이죠. 그는 영웅이잖아요. 이 시대에 영웅이 있다는 것을 시청자들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삶이 어렵다 보니 흔히 말하는 '막장' 보다는 영웅 이야기가 더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저 역시 그런 면이 좋아서 선택하게 됐고요"
다만 아쉬운 것은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쫄깃한 멜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는데, 일부는 그랬기 때문에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하게 드러났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멜로라인이 없어서 시청률 면에서 막판 스퍼트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한다.
오지호는 후자에 힘을 보탰다.
"아쉬운 점은 멜로예요. 7, 8회 정도에 미스김과 장규직의 멜로라인이 좀 더 도드라지게 표현이 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알콩달콩 있었다면 극에 활력이 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일까,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시청자들의 상당하다.
"마지막에 웃는 표정으로 끝내자고 제안을 했어요. 당초 대본에는 그냥 돌아서는 것이 끝이었거든요. 왠지 미소를 짓고 싶더라고요. 무언가 여지를 남기고 싶었는데, 감독님께서도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시즌2가 제작된다면 대본을 보고 결정을 하겠죠(웃음)"
◆ 오지호 Vs 오지호
이로써 오지호는 2013년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작품, '직장의 신'을 하나 추가했다. 데뷔 15년 차, 2000년 영화 '미인'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달려온 시간보다 앞으로를 더욱 기대한다.
당장에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고 해서 좌절하지도, 노력을 몰라줬다고 섭섭해 하지도 않는다.
"15년 동안 연기를 해왔는데, 제게 필요한 역량, 스펙을 넓혀가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시대에 따라 대중들이 원하는, 좋아하는 배우상은 바뀌더라고요. 때문에 배우 역시 사회성을 반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죠. 안방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픈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물론 드라마를 고를 때도 그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그러나, 영화라는 장르에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영화는 제가 하고 싶은 것, 역량을 얻을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선택하는 편이에요. 그런 면에서 즐거움을 1순위로 고려하는 드라마와는 다르죠"
바람이 있다면 1인 체제로 주인공이 극의 전체를 이끄는 영화를 하고 싶다. 누가 봐도 '오지호의 것'이라 불리는 작품을 하는 것이 목표.
오지호는 분명 잘생기기만 한 배우가 아니라,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배우다.
"지금까지 연기를 해오면서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많이 했어요. 무엇이 내게 필요한 건지, 또 대중들은 저에게 무얼 원하는지 말이죠. 같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도 조금씩 변화를 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멋있는 것만 1시간 내내 보여주면 지루해요. 그건 한 시간에 3분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차기작이 결정되지는 않았다. 장규직에 잔상을 그와 대중들이 잊을 때 즈음 새로운 캐릭터로 나타날 계획이다. "작품을 통해 다른 이들의 애환을 담고 싶다"는 오지호라는 배우의 다음 발걸음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하진 이슈팀기자 /hajin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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