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성연진 기자] 우려가 현실이 됐다.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밝히면서, 글로벌 시장이 이른바 거대한 ‘E(Exitㆍ출구전략)의 공포’에 휩싸였다.

미 연방준비위원회(Fed)의 양적완화 축소 언급이 나온 지난 20일(한국시간) 이후, 전세계 증시는 일제히 폭락하고 있다. 그간 각국이 보인 경기 회복세가 미국 정부가 시장에 푼 유동성으로 나타난 ‘착시효과’가 아니냐는 불신(不信)이 퍼지면서 자금 이탈으로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 자금이탈이 초미의 관심이다. 문제는 유동성 수혜를 받은 신흥 시장이다. 한국은 별 수혜도 받지 않았는데도 자금 이탈의 대상에는 포함된다. 외국 투자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경우 우리 경제도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다행히 한국 경제가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가는등 펀더멘털은 여타 신흥국에 비해 우수하다는 점에서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양적완화 후 들어온 외국자금 300조 이상, 언제든 나갈 수 있어=21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국이 양적완화를 실시한 2008년 말 이후 현재(5월 말 기준)까지 외국인의 국내 주식과 채권 보유액은 약 304조5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이 기간 순유입된 주식, 채권 등 포트폴리오 투자자금이 1158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2008년 11월 1차 양적완화 실시 후 2010년 11월, 그리고 지난해 9월까지 4년에 걸쳐 3차례 양적완화를 진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의 자금이 신흥국으로 대거 이동했고, 국내 시장에도 외국인의 주식과 채권 보유규모가 급증했다.

국내 시장이 올들어 글로벌 증시 랠리 속에서 소외되면서, 양적완화의 수혜를 받지 못했다는 분석이 우세했지만, 실제 투자자금 규모는 시장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셈이다. 이들 자금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미국 등 선진국으로 회귀하면서 금융시장을 흔들 수 있다. 외화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게 되면, 주식과 채권 약세는 물론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게다가 국내 시장의 자본자유화 정도가 타 신흥국에 비해 뛰어나다는 점도, 자금 엑소더스 상황에선 불리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 현금화하기가 타 신흥국에 비해 쉽고 빠르기 때문에 자금 이탈이 더 급속도로 나타날 수 있다”면서 “최근 삼성전자의 급락 역시 신흥국 가운데 가장 실적이 탁월한 종목이자, 가장 현금 회수가 빠른 종목이었기 때문에 타격이 컸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밝혔다.

▶외국인은 이미 ‘금융위기’ 수준의 하락에 베팅(?)=주식과 채권, 통화 등 금융시장의 ‘트리플 약세’를 잠재울 열쇠는 결국 외국인의 투자의견에 달렸다. 한국 시장 역시 양적완화로 인한 ‘유동성 거품’에 포함됐다고 판단하는 순간, 외국인 자금 이탈은 막대한 규모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업계는 외국인이 이미 ‘하락’에 베팅한 것으로 보고있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의 선물 수정포지션은 현재(20일 기준) 5만6000계약 순매도로 금융위기 공포가 살아있던 2009년 3월 이후 최대 규모”라며 “2009년 당시 외국인이 대규모 선물 매도 후 현물 매도를 감행한 것을 감안하면, 최근의 대규모 선물 매도도 현물 매도를 위한 1차 장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시장에서의 매도세가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2008년 당시 1년간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 규모는 156조원이다. 당시 코스피 지수는 900선으로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은 1600원 턱밑까지 올랐다.

전문가들은 다만 현재의 글로벌 시장 상황이 2008년보다는 2004년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2004년 미 Fed는 기준금리를 5.25%까지 끌어올리며 유동성 회수에 나섰고, 그해 4월부터 8월간 글로벌 증시는 7.5%, 코스피는 25% 폭락했다.

이상재 현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2004년 일어난 조정국면이 올 여름 재현될 수 있다”면서 “아세안 증시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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