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숨진 채 발견된 전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40)은 그의 야구인생 안팎으로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비운의 스타였다.

야구기대주로의 화려한 데뷔, 부상과 투수로서의 재기 실패, 톱스타였던 故 최진실과의 결혼과 파경 등 그의 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극적이었다.

194㎝의 큰 체구, 우완 투수였던 조성민은 신일고등학교 재학시절 모교를 1991년 봉황기, 황금사자기 우승으로 이끌며 기대주로 이름을 알렸고 1996년 고려대를 졸업하며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 계약금은 1억5000만엔이었고 임선동, 박찬호 등과 함께 ‘황금의 92학번’으로 불리며 시대를 풍미할 트로이카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17년 동안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의 삶은 시련과 재기의 연속이었다.

1997년 처음 1군 무대에 선 그는 1998년 본격적으로 요미우리의 선발 투수가 돼 그 해 6월까지 7승을 기록하며 다승 공동 1위에 오르기도 하고 완봉승 3번, 완투승 2번 등으로 팀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해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감독의 추천으로 올스타에 선발되고 신인왕 후보로 꼽히기도 했던 그는 이후 갑작스런 난조와 부상으로 잠시 침체에 빠지는 듯 했다.

그러나 슬럼프는 오래갔고 1999년 팔꿈치 수술을 받고 부상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였지만 재기엔 실패한 채 2002년 요미우리를 떠나야만 했다. 일본에서의 4시즌 통산 53경기에 출전한 그의 성적은 11승 10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2.84였다.

2003년과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서를 제출, 재기를 노렸지만 그를 찾는 팀은 없었다. 그러다 2005년 5월, 한화 김인식 감독의 부름으로 계약금 없이 연봉 5000만원에 계약하고 마운드에 섰지만 그해 8월, 1승을 거두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전성기의 구위는 되찾지 못하고 3시즌 동안 35경기에 나서 3승 4패, 평균자책점 5.09를 기록한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후 방송 해설가로 나서기도 하고 2011년 두산 베어스 2군 재활 코치와 불펜 코치로 새출발을 하며 지난해 말까지 선수를 지도하기도 했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야구장 밖 인생이었다. 2000년 톱스타 故최진실과 결혼했으나 불화설이 나돌며 2004년 파경을 맞았고 폭행논란도 있었다.

故최진실과 처남이었던 故최진영의 죽음, 자녀의 양육권, 재산권 문제 등 끊이지 않는 비운의 인생을 살아야 했던 그는 끝내 40세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김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