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지현이 천만 영화 ‘도둑들’에 이어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이번 영화 속 그의 모습은 예니콜과는 사뭇 다르다. 제멋대로인 성격에 액션도 수준급인 예니콜과는 달리 ‘베를린’ 속 련정희는 침착하기 그지없다. 보호본능마저 느껴질 정도다.
어느 배우든 작품을 통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고착화된 이미지를 파괴하려 하지만, 전지현의 변신은 가히 인상적이다. 배우로서 한 걸음 성숙해졌고,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한층 더 과감해졌다. 실제로 류승완 감독에게 ‘베를린’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제가 본인의 색깔이 강한 분과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그 색을 제가 표현할 자신이 있거든요. ‘도둑들’ 끝나고 차기작을 고를 때 비중은 작지만 꼭 한번 ‘베를린’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지현이 먼저 출연의사를 내비치자 류승완 감독은 그를 위해 대본을 전폭적으로 수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현의 지인들은 이번 영화 출연을 걱정하기도 했다고.
“제 스스로 배우로서 의미를 채우고 싶었어요. 제가 참여 의사를 밝히니 감독님이 대본을 수정해주셨죠. 제 주변에서는 워낙 감독님이 여배우들과 작업한 적이 많지 않다 보니 걱정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수정된 시나리오나 열려 있는 가능성과 상황들을 보고 이거다 싶었죠.”
겉으로 표현을 못 하는 성격의 련정희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고역이었다. 전지현은 “배우들이 사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연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사투리보다도 련정희라는 불쌍한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 힘들었죠. 사람이 사는 게 아닌 자유라고는 경험도 못한 련정희를 표현하면서 너무 슬펐어요. 가정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 예를 들어 근친상간 같은 걸 생각하면서 련정희를 그려냈죠. 특히 저는 련정희의 결말이 너무 불쌍했어요.”
무엇보다 련정희가 표종성의 상처난 몸을 치료해 주는 장면은 극의 유일한 멜로로 꼽히기도 한다.
“아마 더 어렸으면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았을 거예요.(웃음) 촬영의도는 있었어요. 급박한 상황에 성적으로 끌리는 남녀의 모습이기도 하죠. 사실 그런 장면은 배우들이 만드는 거잖아요. 여배우로서 그런 장면을 한 번은 찍고 싶었어요.”
베를린’은 멀티캐스팅 영화다. 누구 한 명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라 캐릭터들의 매력이 곳곳이 살아있다.
“멀티캐스팅 영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역할 자체가 배우들의 욕심을 자극한다는 거죠. 매력적인 역할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관객들의 눈이 높아졌잖아요. 한국배우로서 굉장히 뿌듯해요.”
이번 영화 촬영은 어느 때보다 즐거웠던 듯했다. 특히 상대배우로 호흡을 맞춘 하정우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정우 씨는 너무 좋은 동료배우에요. 굉장히 캐주얼하면서 연기도 잘 하고요. 사실 만나기전에는 진지한 사람인 줄만 알았거든요.(웃음) 연기 흡입력도 굉장하고요. 연기에 있어서 제 스타일이었죠. 한석규 선배 역시 한국 영화의 장을 연 굉장한 분이잖아요. 류승범 씨도 본인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고요.”
점점 더 성숙해진 연기력으로 호평을 얻고 있는 전지현은 전진하는 법을 아는 배우다.
“16년 동안 연기하면서 논 건 아니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연기하는 데 있어 표현하는 폭이 넓어지더라고요. 표현 방법도 성숙해지고요. 사실 연기적으로 깊이를 논하기에는 제가 아직 어린 배우죠. 관객들도 점점 성숙해져가는데 저만 정체하란 법은 없잖아요.”
여배우에게 있어 결혼은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결혼 후 안정을 찾고 안정된 연기력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추세다. 전지현은 이 같은 ‘품절녀 스타’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진짜 제 삶을 살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그게 참 좋은 것 같아요. 모든 선택과 판단을 제가 직접하고, 결과 역시 제가 감당해야 하죠. 한 가정도 제가 꾸려나가는 거고요. 그런 책임감이 들어서 기분이 참 좋아요. 물론 아직까지 실수도 많이 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제가 판단하고 사는 것 같아서 많이 배우는 기분이에요. 더 성숙해진 것 같아요.”
데뷔 초 CF계의 여신으로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지만 ‘엽기적인 그녀’(2001) 이후 마땅한 대표작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한 층 성숙한 모습으로 스크린을 점령한 전지현은 한 층 성숙해진 연기력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만끽하고 있다. 해가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전지현의 향후 활동에 기대가 모아진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 jwon04@ 사진 황지은 기자 hwangjieu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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