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대표와 허영만 화백 NDC13서 진솔 대담 … 재미와 감동 위해 현실에 충실하면 미래는 밝다
푸근한 인상을 가진 중년의 게임사 대표가 편안한 목소리로 질문을 건네면 머리 희끗한 노화백이 웃음을 띄며 답을 남겼다. 마치 한가한 오후에 차 한 잔을 나눠마시듯 진행된 대화 속에는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진지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NDC(넥슨 개발자 컨퍼런스)13에서 가장 큰 화제를 낳았던 넥슨 서민 대표와 허영만 화백의 대담은 화기애애함 속에서도 깊은 울림의 파장을 남기며 개발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4월 23일부터 24일까지 양일간 진행된 NDC2013에서 게임과 만화가 만났다. 특히 첫 날 키노트 강연에서는 서민 대표와 허영만 화백이 'WHAT COMES NEXT'라는 주제로 대담을 진행하는 색다른 시도로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각 업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이 나눈 30분간의 대화는 결국 콘텐츠란 대중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안겨줘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될 메시지로 마무리됐다. 게임과 만화가 대비해야 할 미래가 무엇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재미와 감동이라는 고유의 가치를 지킬 때 변함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대담의 결론이었다. 게임과 만화를 포함한 문화콘텐츠 산업, 더 나아가 세상을 주도하는 모든 산업들은 변화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 과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할까. 두 사람의 대담을 복기하며 해답을 더듬어보자.
게임인들의 정보 교류의 장으로 확고한 입지를 굳힌 NDC는 올해로 7회째를 맞았다. 명성에 걸맞는 내실있는 강연과 원활한 진행으로 게임들의 갈증을 상당 부분 해소시켰다는 평가다. 특히 'WHAT COMES NEXT'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NDC13에서는 급변하는 게임산업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으며 최근 새로운 중심으로 도약한 모바일게임 및 소셜과 관련된 세션을 전면에 배치에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대담 속에 담겨진 깊은 의미 서민 대표와 허영만 화백의 키노트 강연은 시작 전부터 큰 화제를 낳았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게임 시장을 선도하는 넥슨의 수장과 1974년 '집을 찾아서'로 데뷔, 5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각시탈', '비트', '타짜', '식객',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등 수많은 명작을 통해 만화 산업을 지탱해온 노화백의 만남은 문화 산업 전체가 주목할 만큼 뜻깊은 자리였다. 허화백은 기억도 희미한 시절에 다방에서 시간을 죽이기 위해 벽돌깨기를 했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웃었다. 게임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자신이 이 자리에 서도 되냐며 겸손해한 그였지만 게임과 만화라는 문화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묻는 서민 대표의 질문 앞에서는 50년 내공이 담긴 거침없는 답변을 서슴치 않았다.
'WHAT COMES NEXT'라는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인간성이 말살되고 있음을 들어 종말이 다가온 것 같다던 그의 대답에는 농담처럼 들리는 안타까움이 숨어 있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존엄성은 부족하지 않냐는 일성은 삶의 본질에 접근해야 하는 콘텐츠 종사자라면 누구나 기억해야 할 명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업계에서는 이런 자유로운 대담이 NDC13을 장식했다는 점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알찬 내용에도 불구하고 여유와 위트가 부족하다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이유에서다.
철저한 준비로 변화에 적응 허화백이 던진 첫 번째 메시지는 변화에 적응하라는 것이다. 작년까지도 종이에 만화를 그렸던 그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올해부터 스마트 디바이스에 적응하는 중이다. 예순이 넘은 노장. 어찌보면 하던대로 해도 최소한의 성공을 보장받을 위치까지 오른 그도 더 좋은, 더 감각적인 만화를 선보이기 위해 낯선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있다. 불편하고 답답해도 변화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그의 말은 그 어떤 산업보다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게임인들이 큰 공감을 자아냈다.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는 철저한 사전 조사를 꼽았다.
실제로 허화백은 관상을 주제로 한 '꼴'이라는 작품을 위해 3년 반동안 전문가에게 교육을 방았다고 말해 탄성을 자아냈다. 지금도 어디를 가든 취재를 하고 메모를 한다는 그는 철저한 준비만이 새로움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삶이 전쟁이듯 만화를 그리는 것도 전쟁과 다를바 없다는 말에서 비장미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허화백이 카카오 페이지에서 처음으로 만화를 연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철저한 준비를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그는 종이 만화 시장이 사실상 종말을 고한 지금, 카카오 페이지를 통한 만화 연재가 후배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며 남다른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이제는 만화콘텐츠 산업 전체의 성장을 배려하는 노장의 책임감이 돋보였다.
게임의 가치는 재미와 감동 서민 대표가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만 결국 허화백이 강조한 것은 재미와 감동이다.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누렸던 '타짜'의 시작점이 바로 재미였다. 지리산 어귀에 은퇴한 노름꾼이 있었고 그의 손이 눈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허화백의 손은 '타짜'를 그리기 시작했다. 무엇이 인기를 얻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과연 독자들에게 재미를 안길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인가를 먼저 찾은 것이 만화로도, 영화로도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 '타짜'의 탄생 비화다. 성공만 강조되는 시장 논리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었다. 허화백은 동시에 콘텐츠란 감동을 동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런닝 타임 내내 호쾌한 액션으로 점철된 서부 영화라고 항상 재미있지는 않다. 때로는 지루함에 몸부림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는 감동의 부재를 이유로 꼽았다. 재미라는 것은 결국 감동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허화백이 말하는 문화콘텐츠가 걸어나아야 할 방향이다.
대담 말미에 서민 대표가 다시 던진 'WHAT COMES NEXT'라는 주제에 대해 허화백은 특유의 솔직함을 드러내며 참석자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만화든 게임이든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합니다.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누구도 즐겁게 만들 수 없을 테니까요. 즐겁게 살면 역경은 오지 않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지만 저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분명 미래의 한 가운데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정광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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