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저녁, 한 사내가 언 입김을 녹이며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 작고 허름하지만 가족 소리 도란도란 나는 집으로 들어선다. 돼지고기 숭숭 썰어놓고 끓인 김치찌개가 모락모락 김을 내는 저녁상. 연로한 부모와 장성한 3남매가 있는 풍경이 정겹고 따뜻하기만 하다. 장남이 대표 삼아 한 마디 한다.

“이제 우린 걱정 없다. 나는 취직했지, 막내는 대학 졸업했지, 둘째는 이제 결혼하지.”

지난 22일 개봉한 한국영화 ‘만찬’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너무도 평범한 이 가족에게 가난하지만 단란했던 행복은 짧았고, 가난해서 맞은 불행은 길고 깊었다. 영화 ‘만찬’은 한 가족을 서서히 잠식해가는 불행의 그림자와 그래도 희망이고 위안으로서의 가족을 그린 드라마다. 영화 속 가족의 운명이 비극의 얼굴을 드러내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장남은 회사 구조조정으로 권고사직 당하고, 대학 졸업장이 막내에게 남겨준 것은 막대한 학자금 대출과 낮에는 트럭운전, 밤에는 대리운전하며 ‘투잡’으로 뛰어도 빚만 늘어가는 비정규직 ‘알바인생’뿐이었다. 결혼했던 누이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어린 아들만을 떠안은 채 이혼했다.

오는 2월 6일 개봉하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도 단출하지만 흐뭇한 가족의 저녁 풍경이 등장한다. 홀아버지가 택시운전하며 두 남매를 키우는 가정. 가난한 환경에도 공부 잘했던 딸이 대기업 신입사원 채용 합격장을 막 받아 쥔 참이다. 천사 같은 딸은 아버지에게 새 차를 사 주고, 남동생 대학 졸업시켜주겠다며 다짐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딸의 약속이 물거품이 되기까지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딸은 입사 2년 만에 백혈병이 걸려 꽃다운 나이에 눈을 감는다. 하지만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은 딸의 병이 업무상 재해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딸을 위해 길고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최근 몇 년간 우리 문화계엔 ‘힐링’ 바람이 거세다. 그리고 영화 ‘변호인’을 비롯한 9편의 1000만영화가 증명하듯 한국영화는 눈물로 국민을 위로하는 ‘힐링’의 대표적인 상품이 됐다. 그렇다면 ‘힐링하는 문화’의 이면은 무엇일까? ‘킬링 소사이어티’, 즉 병주는 사회다. 물론, 건강한 몸이라고 해서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듯, 어떤 사회도 갈등과 충돌, 범죄 등 각종 병리적 현상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인체든 사회든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유기체를 파괴하려는 힘과 이를 방어하려는 힘 간의 연속적인 싸움의 과정이며 모든 건강한 유기체는 자기 치유의 능력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 문제는 유기체 내부의 자기 치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다. 역대의 한국영화의 흥행작들은 기묘하다 할 만큼 공통적으로 우리 사회의 자기 치유 시스템이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국영화 융성의 이면은 정치의 좌절과 경제의 실패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힐링’, 곧 약주는 문화가 아니라 ‘킬링’, 즉 병주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닐까? 한국영화계가 좀 더 밝고 경쾌한 ‘꿈의 공장’이 되는 날은 언제일까?

이형석 엔터테인먼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