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의 롤 모델은 18세기 제정 러시아 예카테리나 대제(?)’

앙겔라 메르켈(59) 독일 총리의 책상 위에는 러시아 예카테리나 대제의 초상화가 놓여 있다. 한 독일 TV와의 인터뷰에선 예카테리나 대제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많은 것을 이룬” 지도자라 치켜세웠던 적도 있다.

메르켈 총리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불거진 동-서 문제의 ‘해결사’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독일이 러시아와의 유대관계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또 이같은 외교를 통해 동서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민한 전략가’ 메르켈, ‘해결사’로 급부상=예카테리나 대제가 언급된 것은 그가 독일 태생이었기 때문이다. 예카테리나(독일명 조피)는 프러시아(구 독일)에서 태어나 러시아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남진, 서진 정책으로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했으며 재위 기간 크림반도도 손에 넣었다.

메르켈 총리도 러시아와 인연이 있다.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메르켈 총리가 구 동독 출신으로 러시아어가 유창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동독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학창 시절 모스크바를 여행하기도 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냉전 시대 KGB요원으로 드레스덴에서 머물며 독일어를 배운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주에는 푸틴 대통령과 단독으로 3차례 이상 통화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러시아와의 친밀감을 높여 외교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이 메르켈 총리의 노림수다. 사실 이 초상화는 메르켈 총리가 기독교민주당 당수를 맡으면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2009년 독일 슈피겔지를 인용, 그를 ‘영민한 전략가’라 칭하기도 했다.

이런 외교적 영민함과 유대관계 등이 부각되면서 메르켈 총리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사로 떠오르고 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4일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크림 반도 위기를 끝내기 위해 메르켈 총리가 서방과 러시아를 중재하는데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 일간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도 “메르켈 총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라며 “그가 이번 분쟁을 해소하는데 중심 역할을 맡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독일 경제와 에너지 안보=메르켈 총리가 러시아에 치맛자락을 휘날려야만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러시아는 독일 석유, 가스 수입량의 35%를 차지한다. 또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독일 기업만도 6000개에 이른다.

독일 최대 일반의약품 제조사인 슈타다 아르쯔나이미텔은 2012년 매출의 19%가 러시아에서 나왔다. 이번 사태로 인해 매출 하락이 예상되는 기업이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에 초고속철도를 건설 중인 지멘스와 독일 최대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업체인 바스프의 윈터셸 홀딩 사업부 등도 어렵게 사업에 진출했지만 위기에 직면했다.

또한 러시아에 있어 독일은 최대 수입국이다. 2012년 기준 독일은 러시아 수입의 31%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르스텐 니켈 테네오 인텔리전스 애널리스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난제에 있어 독일은 유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비록 러시아와 쉽지 않은 관계지만 두 나라간의 매우 밀접한 경제적 유대관계 때문에라도 독일은 서방과 러시아 사이의 파워 중개인 역할을 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예상했다.

▶제재안에 조심스런 독일=유럽연합(EU)은 긴급 외무장관 회의를 통해 러시아와 비자면제 협상 중단 등의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EU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력 철수를 촉구하며 불응시 무기금수 제재 등도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독일 등은 이번 회의에서 자산 동결 등의 강력한 제재 조치보다 외교적 해결 방안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하름스 독일-러시아 외교 무역 협회 대표는 경제 제재안이 러시아에 “적절치 못할 뿐만 아니라 이행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경제제재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중국이 독일 상품을 쉽게 대체할 수 있어 러시아보다 독일에 더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고 지적했다.

이런 면에서 5일 진행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의 긴급회동은 군사적 긴장완화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주목되고 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러시아 이사회(NRC) 특별회의를 개최하기로 러시아측과 합의했다고 4일 밝혔다.

문영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