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자기결정권’ 연령 만 13세 “너무 낮다” 비판 목소리 커져 외국 대부분 만 15~17세 기준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여중생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이 4번째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의 최대 쟁점은 둘의 관계가 서로 사랑해서 맺은 것(화간)이냐 아니면 성폭행(강간)이었냐 였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27살이라는 나이 차에도 ‘진정한 사랑’을 했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이 정말 ‘사랑했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과 관계 없이 만 13세 이상이면 성적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으로 보는 우리 형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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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 이광만)는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연예기획사 대표 조모(46) 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조씨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상고장을 제출해 이 사건은 다시 한번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조씨는 2011년 8월 자신의 아들이 입원한 서울의 한 병원에서 만난 A양(당시 15세)에게 “연예인을 시켜 주겠다”고 접근, 수차례 성폭행하고 임신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1ㆍ2심 재판부는 조씨의 혐의를 인정해 각각 징역 12년과 징역 9년을 선고했지만, 조씨는 “사랑해서 이뤄진 관계로 강간이 아니다”며 상고했고, 대법원은 여러 증거를 통해 둘 사이를 진정한 사랑으로 판단해 무죄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현행법에 따르면 성인과 만13세 이상의 미성년자가 성관계를 맺더라도 ‘사랑’이라면 처벌할 규정이 없다. 몇 해 전에도 서울의 한 중학교의 30대 여교사가 자신이 담임을 맡은 15세 남학생과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당시 경찰 역시 “학생이 13세 이상이고 대가 없이 합의로 이뤄진 성관계이므로 현행법 상 처벌할 수 없다”고 수사를 종결한 바 있다.

형법 제305조에 따르면 만 13세 미만일 경우에만 사랑이나 합의 등과는 관계 없이 의제강간(강간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규정해 처벌한다. 13세 미만은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봐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지만 13세 이상부터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연령이 너무 어리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우리보다 성에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대부분 만 15~17세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은 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17세 미만 청소년과의 성관계는 합의 여부에 상관없이 무조건 형사처벌한다. 영국과 캐나다, 호주 등은 만 16세, 프랑스는 만 15세를 의제강간의 성립 기준 연령으로 보고 있다.

특히 10대 성폭행 피해자들의 공통된 심리가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자기 합리화를 무수히 시도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제강간 연령을 높이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해 볼 시점”이라며 “아이들끼리는 몰라도 성년과 미성년자의 관계는 조금 더 엄격하게 법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신체적 성숙이 빨라지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의제강간의 기준연령을 높이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의제강간 성립이 만 13세를 두고 나뉘는 건 우리 형법상 형사미성년자를 만 14세로 규정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13세나 14세가 넘어가면 일반적 지각 능력이 성숙해 판단하는 데 문제가 없는 나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의제강간 연령을 높이려면 형사미성년 등 다른 법률에서 보호하는 연령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할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badhone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