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아치아라의 비밀’로 전성기 처음 1~2회 분량 출연 예상했는데… 12년 배우생활중 가장 강한 존재감 “욕심 버리니 기회가 찾아 오네요”

한 때는 ‘제2의 전지현’. “그 땐 제2의 OOO‘으로 부르는게 유행이었어요.” 이젠 장희진을 제2의 누군가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장희진(31)은 연예계 데뷔의 ‘등용문’이었던 패션잡지를 통해 업계에 발을 들였다. 벌써 12년차가 됐다. 쌓아온 작품의 숫자가 장희진이 달려온 긴 시간을 말해준다.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은 얼굴이 됐다. 하지만 장희진이라는 연기자를 설명할 작품은 선뜻 말하기 쉽지 않다. 드라마는 조연배우의 캐릭터를 말해줄 공간을 충분히 만들지 않는다.

“그동안의 작품에선 여러 감정을 보여주는 씬이 많지 않았어요. 하나의 모습만 보여줬죠. 연기해온 역할 중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에요.”

드라마 내내 ‘장희진’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장희진 이름 옆에 따라올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이 드라마에서 장희진은 의문의 죽음을 맞은 김혜진 역할을 맡았다.

“원래 성격이 그렇게 차분한가요?” 조곤조곤 자신의 말을 곱씹었다. 생각과 말을 정리하려는 가늘고 하얀 손의 움직임은 슬로우모션 비디오를 보는 듯했다. ‘맞아요’, ‘저도요’. 마주 앉은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아니에요. 저 엄청 덤벙대고, 성격도 밝아요.” 아직은 김혜진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성폭행 피해자가 낳은 딸.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입양 후엔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 범죄로 잉태된 생명은 희귀병을 앓았다. “살고 싶어” 찾아간 생모의 고향에서 생부의 아내에게 살해를 당한다. 엄마는 딸을 산에 묻었다. 기구한 삶을 기어이 살아내려는 여자는 첫회에서 백골로 등장해 16부 내내 강력한 존재감을 발했다. 모든 길은 ‘김혜진’으로 통했다.

‘자극적인 소재’와 ‘극단적인 스토리’로 자칫 “오명만 쓰고 끝날 수 있는 드라마”였다는데, 시청률만 아쉬운 ‘웰메이드 드라마’로 호평받았다. 처음으로 다양한 감정을 쏟아낸 장희진의 얼굴엔 만족감과 쓸쓸함이 교차했다. 아직 김혜진의 분위기가 남았다.

심정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성폭행 피해자도 아닌 그 피해자가 낳은 딸의 삶을 TV드라마가 보여준 적은 없었다. “저도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캐릭터의 해석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공통분모라고는 찾을 수 없는” 김혜진에게 장희진은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누구나 외로움과 아픔이 있잖아요. 혼자 외로운 삶을 살았고, 곧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혜진이가 안타까웠어요.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드라마에서 장희진에게 주어진 애초의 분량은 적었다. 섭외 당시 이용석 감독은 “분량은 기대하지 말라”고, “초반에만 나오고 안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예전엔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분량이 확보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안에서의 비중이 작품 선택의 기준이었죠. 이젠 한 신이 나와도 임팩트가 있는 인물을 봐요. 시놉시스도 믿지 않아요.”

드라마의 시작부터 백골로 등장했기에, 1~2회 정도의 출연만 예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회상신이 늘어나며 김혜진의 사연이 풍성해졌고, 장희진은 드라마를 통해 그간 다져온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10여년의 조연 생활, 빼어난 미모로 주목받으며 등장했고, “연기가 좋아” 숱한 작품을 만났다. “왜 욕심이 없었겠어요. 빨리 스타가 되고 싶고, 위로 올라가고 싶었죠. 20대엔 제 직업, 연예계에서의 위치가 제 삶의 위치라고 동일시했어요. 답답하고 힘들었죠. 뭔가를 잡으려고 할수록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장희진의 20대는 항상 ‘조심스러운 삶’이었다고 한다. “여배우이기 때문에 많은 걸 차단”했고, “쉬는 날엔 은둔생활”을 했다. “오해를 사는 일이 두려워”고 외부로부터 고립된 삶을 보냈다.

“톱스타가 됐다면 얻는게 있으니 감수했을까요. 일에 대한 성과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다 보니,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이렇게 살아야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래 전 밝은 아이였는데, 연예인이 되고 나서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욕심을 버리니 도리어 기회가 찾아왔다. ‘세 번 결혼한 여자’(SBS)에서 톱스타 다미를 만나 연기의 깊이를 배웠다. 장희진이 좋아하는 섹시한 여배우, ‘팜므파탈’ 캐릭터였다.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세결여’를 지나 ‘마을’로 12년 만에 빛을 발한 장희진은 어느새 직업인으로의 연기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지난 10여년이 단단하게 굳어져 흔들림이 없었다.

“조연의 역할을 하고 있어도, 내 인생에선 내가 주인공이잖아요. 일도 중요하지만 이젠 사랑도, 저의 상태도 중요해요.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싶고요. 다시 밝았던 제 성격대로 살고 있어요. 욕심 부리지 않고 지내요. 연기를 더 오래 하고 싶거든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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