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중2병’이라는 정체불명의 질환이 있다. 1999년 일본 배우 이주인 히카루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사용했다는 이 말은 ‘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이 사춘기 자아 형성 과정에서 겪는 혼란이나 불만과 같은 심리적 상태’를 일컫는다. 인터넷에서는 소위 “남과 다르다”거나 “남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을 비꼬는 용어로 쓰인다. ‘중2병’을 TV단막극에서 다룬 방식은 조금 달랐다. 성적 지상주의 세계 안에 살고있는 위태로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중학교 2학년들의 잔인한 세계가 두루 담겼다. 6일 방송된 KBS 2TV 드라마스페셜 단막 2014 ‘중학생 A양’(극본 김현정, 연출 백상훈)이 그것이다.
드라마의 시작은 ‘사교육 일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 대치동. 이름도 거창한 ‘명문중학교’에 강북 중학교 출신 남학생 해준(곽동연)이 전학오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그들의 세계는 ‘정글’이었다. 석차 하나 떨어질까 전학생의 존재조차 달갑지 않았고, 등수 하나 올리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루머를 만드는 것에도 거리낌 없는 폭력성도 함께 가진 잔혹한 청소년들의 세계다. 성적 지상주의 세상 안에 사는 중학생들의 비극을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게 담아낸 드라마였다.
해준은 강북 학교에서 전학온 이후 치른 첫 번째 시험에서 반 1등을 하게 되며 돌연 대치동 아이들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특목고’ 진학반에 가기 위한 아이는 한 반에 단 두 명. 1, 2등 뿐이었지만 해준의 등장으로 석차가 줄줄이 밀린 아이들은 강북 전학생을 은밀한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2등으로 밀린 ‘싸가지 퀸’ 은서(이열음)도 다르지 않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배경과 미모로 아이들의 시선을 받는 주인공. 드라마는 은서의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사회면에 주로 등장하며 스스로 목숨까지 끊으려 하는 부모 욕심에 치인 아이가 바로 은서였다. 은서의 부모는 명문대 간판을 위해 입시지옥으로 은서를 내몰았고, 은서는 오로지 성적 올리는 기계처럼 학교와 학원가를 전전한다. 당돌하고 싹수 없는 캐릭터이면서도, 1등만을 강요하는 학교와 가정 안에서 고갈된 여중생의 아픔이 이열음을 통해 두루 스며나왔다.
드라마는 은서의 발칙한 게임으로 상황을 이어간다. 1등 한 번 놓쳐 본 적이 없는 은서는 등장과 함께 자신을 내려앉힌 해준의 성적을 떨어트리기 위해 친구 나연(이한나)에게 은밀한 게임을 제안했다. 해준의 마음을 빼앗아 성적을 떨어뜨리고, 성추행범으로 몰려는 위험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어긋났어도 은서와 해준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며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돼갔다. 문제는 잔인한 정글에 살던 아이들에게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 양호실에서 해준이 은서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있는 사진이 SNS를 통해 일파만파 번지며 해준은 ‘공공의 적’이 됐다. 1등이 추락하면 다른 아이들의 석차는 올라간다. 하나로는 부족하다. 또 한 번의 게임이 시작된다. 해준에게 벌어진 일이 은서의 계략이었다는 루머의 확산. 은서는 하루 아침에 ‘명문고 가슴녀’가 된다. 중학생 A양이었다. 이 모든 게 단짝친구로 은서의 곁을 지켰던 나연이 꾸민 일이었다.
야생의 정글보다 더 지독한 입시정글을 헤쳐나가는 아이들의 삐뚤어진 현실을 담은 드라마는 험난한 과정 뒤엔 희망을 그렸다. 은서는 여전히 일등을 놓치지 않지만 동행해준 해준을 잃어버린 정글에서 휘청이고 만다. ‘명문고 가슴녀’라는 이름으로 신상이 털린 은서의 페이스북을 우연히 보고 오해를 푼 해준은 다시 은서의 풀어진 운동화 끈을 묶어주며 함께 걸어가기를 약속한다.
1등만을 바라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사회를 버텨내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희망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칭찬보다는 가산점이 우선하고, 이름보다는 등수로 불리는 사회, 부모들은 학습 감시자로 전락한 가정에서 숨 쉴 틈 없는 하루를 이어가는 아이들의 비극은 드라마 말미 흐르는 ‘내가 네 편이 되어 줄게’ , ‘다 잘 될거야’라는 가사를 전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잔잔한 드라마 한 편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시청자들은 게시판과 SNS를 통해 “마지막 노래 가사가 가슴에 와닿는다. 청소년 문제에 어른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곽동연과 이열음이 신발끈을 함께 묶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기대 이상이다. 믿고 보는 KBS 드라마스페셜”이라는 반응을 전했다. 이날 방송은 2.9%의 전국시청률(닐슨코리아 집계)을 기록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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