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풀이 흔들린다. 꽃이 웃는다. 나비가 춤을 춘다. 세상과 분리된 듯 고요한 정원에서 님프(Nymph)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포착하지 못했던 풍경 너머의 풍경들이 중첩돼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젊은 사진작가 킴 보스케(Kim Boskeㆍ36)의 작품 ‘무제(꽃)’ 시리즈. 꽃길을 거닐며 찍은 수십장의 사진을 겹쳐 한 장의 이미지로 완성한 이 작품은 마치 17세기 인상파 화가의 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는 없을 것만 같은 이 몽환적인 풍경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이 공간임을 자각하게 한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왕립미술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암스테르담을 본거지로 활동 중인 보스케는 독일 베를린 안도파인아트(Aando Fine Art) 갤러리의 대표 작가로 작품을 전시했던 것이 인연이 돼 한국에서도 개인전을 갖게 됐다. 청담동 박여숙 화랑에서 열린 ‘당신의 풍경을 거닐다(I go walking in your landscape)’ 전시회에서 만난 보스케는 흡사 작품 속 정원에서 막 걸어나온 님프인듯 소녀보다도 수줍은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자연이라는 하나의 풍경을 놓고 여러 다른 각도에서 20장 많게는 50장에 이르는 사진들을 찍은 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하나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사진을 찍는 것 자체는 전체 작업 과정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사진을 중첩(Layering)하는 과정은 한 달이 걸리기도 하고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사진 작업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작품은 인상주의 작가들의 회화와 흡사하다는 평가가 많다. - 아무래도 네덜란드 출신이다 보니 내 안에 그러한 감성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작업 초기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다. 회화적인 필법(brush stroke)는 작업의 우연한 결과물일 뿐이다. 사진이나 회화작품보다 오히려 수학(mathematics)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는다. ‘페르마(Fermat)의 마지막 정리’처럼 긴 시간동안 풀지 못했던 수학적 난제를 해결한 앤드류 와일즈(Andrew Wiles)와 같은 수학자들을 보며,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동안 작품과 씨름하는 나의 작업들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간속에는 단순히 시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찰나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나무 하나를 봐도 한 순간에 하나의 공간만을 보게 되는데, 나는 완성된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다층적인 시간과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똑같아 보이는 자연환경이 사실은 매우 변화무쌍하며, 그러한 자연이 존재 자체(Being)가 아닌 존재가 되어감(Becoming)에 집중하고 있다.

▶ ‘Untitled’ 흑백사진 연작은 일본에서 작업 중이라는데.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일본 에니메이션에서 영감을 얻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을 좋아한다. 한달 정도 머무르며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은.

-‘무제(Untitled)’ 연작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분간 자연을 배경으로 한 사진 작품들을 계속하면서 동시에 비디오와 결합한 작업으로 확장시켜 나갈 예정이다.

전시는 5월 2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