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의 개통은 국제 교역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해운물류의 혁명을 가져왔다. 두 운하의 건설로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북미를 연결하는 해상 항로가 절반가량 단축되면서 국제물동량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관통되면 유럽은 아프리카 대륙을 돌지 않더라도 인도양으로 곧 바로 연결된다. 이 때문에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부터 많은 인력과 예산을 동원해 수로를 개척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지도를 바꾸는 대역사인 만큼 오랜 기간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이것을 실현시켜 준 계기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계식 준설기의 등장과 더불어 모험자본을 가능케 한 자본시장과 주식회사의 보급이었다.
1854년,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는 이집트 총독을 설득해 운하 개설 허가를 얻었다. 레셉스는 이집트 내 ‘만국 수에즈 해양운하회사’를 설립해 거금 2억 프랑을 주식공모를 통해 조달했다. 주식을 프랑스 등 국제 자본시장에서 판매해 거액의 자금을 일시에 모운 것이다.
또 공사 중에 추가비용이 발생하자, 1억 프랑의 채권을 발행해 부족한 재원을 마련했다. 1869년 11월, 마침내 총길이 162.5km로 바다와 바다를 잇는 세계 최대의 수에즈운하가 완성됐다. 이로써 기존항로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꿈의 유럽-아시아 항로가 열린 것이다.
수에즈 운하의 성공에 힘입어, 아메리카에서도 파나마 운하 건설 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1880년 파나마 정부는 수에즈의 성공신화를 만든 프랑스인 레셉스에게 운하건설 허가권을 주었다. 레셉스는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운하를 건설할 주식회사 ‘만국 대양간 운하회사’를 만들어 자본을 모았다. 그런데 공사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풍토병으로 2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위기가 발생한 것이었다. 결국 공사는 중단되고 회사는 도산하고 말았다. 얼마 후 새로운 프랑스계 운하건설회사가 주식시장에 등장했고, 미국계가 이 회사를 인수·합병한 다음, 1914년 드디어 파나마운하를 완공했다.
혁신적인 사업은 위험도 크다. 위험이 큰 모험사업이라면 자본시장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주식회사 제도가 제격이다. 사업의 장래성이 있다면 주식회사는 공모를 통해 얼마든지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다. 주식은 은행대출이나 채권과는 달리 이자 지불도 필요 없는 만큼 조달비용도 저렴하다. 게다가 주식회사는 실패하더라도 투자자들이 출자분만 손해 보면 그만이다. 또 사업자체를 사고파는 인수·합병도 용이하다. 만약 이런 혁신적 사업을 은행권이나 국가예산에 의존했다면 실패 시 부채부담으로 상당기간 재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위험이 큰 대규모 혁신 사업은 모험자본에 의존해야 한다. 두 운하건설의 역사적 사례는 자본시장과 주식회사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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