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팬 많아도 내 책 독자는 어린이”

호기심과 용감한 마음이 영감의 원천

이수지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과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가 28일 제1회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에서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들이 세계적인 시상식을 휩쓸며 ‘고퀄’의 작품을 내놓아도 아동출판 시장의 저변이 확대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사회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이수지 그림작가는 “‘비틀즈의 팬은 매일 태어난다’라는 말처럼 앞으로 계속 새로운 그림책 독자는 있을 것”이라며 “(그림책의 주요 독자인)어린이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다독였다.

아동그림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과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는 28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1회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에서 ‘어린이는 모든 색’ 주제강연과 이어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간 보여온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앞으로 한국 그림책 시장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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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작가가 28일 오후 제1회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에서 ‘어린이는 모든 색’이라는 주제강연을 하고있다. 이민경 기자

이날 강연장은 그의 열성 팬들을 비롯해 그림책을 사랑하는 ‘어른이’ 독자들로 가득찼다. 엄마·아빠가 아이에게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주다가 정작 부모들이 감동을 받아 작가의 팬이 되는 경우가 많은 덕이다. 물론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있을 평일 오후에 강연이 진행돼 어린이 팬들의 참여하기 어려운 시간적 한계도 있었다.

그는 “꼭 오늘 뿐만 아니더라도 강연을 다녀보면 성인 그림책 독자들의 비율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더라”며 “독자의 나이를 넓게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림책이 주는 감상이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어른이 읽을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며 “어떤 작가는 어른만을 타겟으로 한 그림책을 내놓기도 하지만, 나는 독자를 어린이로 상정하고 글을 쓴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강연은 화가의 팔레트를 보여주며 시작했다. 청중들을 향해 누구의 팔레트인지 맞춰보는 퀴즈가 주어졌다. 고흐의 팔레트에 이어서 이수지 작가의 팔레트가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이 작가는 “팔레트를 보는 것 만으로 어떤 작가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금방 알 수 있다”고 했다.

그가 한 작품을 만들면서 쓰는 팔레트에는 심하면 단 한가지 색, 많아도 서너개 정도의 색만 단촐히 오른다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파도야 놀자’는 검은색과 파란색만 쓰였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아이는 파도와 놀면서 점차 검은 옷이 파랗게 변한다. 이 작가는 “표면적으로는 물방울이 튄 것이고, 내재적으로는 아이가 어떤 경계를 건너갔을 때 무언가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푸른색은 어떤 의미(변화)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 한가지의 색만 등장한 작품도 있다. ‘물이 되는 꿈’은 물 하면 떠오르는 파란색 ‘코발트 블루’만 사용해 채색했다. 그는 “짙거나, 옅게 다양한 톤은 있어도 색상은 딱 하나 쓰였다”며 “그림에 색이 다양하게 쓰인다고 해서 더 사실적이진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의 놀이가 장난감이 더 풍부하다고 해서 더 재밌어지는게 아니듯이 말이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도구가 물, 불, 흙처럼 가장 근원적인 것이었던 듯 말이다.

이 작가는 왜 색을 의도적으로 제한해서 쓰느냐는 질문에 “색이 장식이 아니라, 색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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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작가가 작품 ‘선’에서 아이의 장갑과 모자를 빨간색에서 형광핑크로 바꿔봤던 일화를 전하며 색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언급했다.

“색이 하나 또는 둘만 쓰이고, 또 이 색들이 계속 반복되면 독자는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계속 생각하게 되죠. 또다른 작품 ‘그림자놀이’에서 노란색이 아이의 상상력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예요. 이런 ‘색의 논리’를 읽어낼 수 있으면 독자는 매우 재밌어질거고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아직까지도 색에 대한 고정관념이 팽배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선’이라는 작품에서 그가 아이의 장갑과 모자를 빨간색에서 형광핑크로 바꿔봤던 일화를 전했다. 형광핑크색이 아주 맘에 들었던 그와 미국 출판사간의 의견 불일치가 생겼던 것.

그는 “출판사에서 ‘장갑과 모자를 핑크색으로 하면 그 책은 여자 아이 책이 되어서 매출이 반토막이 돼 원래의 빨간색으로 돌아가는게 좋겠다’고 하더라”며 “결국 그 조언을 받아들였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색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순수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가득찬 그의 그림책을 보고 있노라면, 이수지 작가의 영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없다.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직접 알아보는 ‘용감한 마음’이 합쳐져야 새로운 생각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그림책 작가들이 지금의 부흥기를 이어가며 순항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그림책을 보는 문화가 더 많이 퍼져야 하고, 도서관이 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창작자들이 지속가능한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책이 대여될 때마다 일정 비율이 작가에게 금전적 보상으로 돌아가는 ‘공공대출보상제’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