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불교에서는 정치권 인사들의 출입을 거부하는 등 종교계 내·외부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자주 발생된다. 이런 크고 작은 문제를 만들어내는 종교인이 있는 반면 온몸으로 부딪히며 묵묵히 맡은바 책임과 선교활동에 헌신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성남주민교회(www.jumin.org) 이해학 목사는 73년 성남특수지역선교위원회에 파송된 것을 계기로 빈민운동, 노동운동, 민주화 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를 넘어선 사회운동을 주도했다. 이미 4ㆍ19 혁명 때 의식을 가지고 앞장섰던 이 목사는 시위주도자로 지목돼 제적이 되는 등 유신체제의 희생자가 됐지만 대학 졸업 후에도 박형규 목사와 더불어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거리로 내몰린 빈민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성남수도권특수지역선교가 만들어졌다. 이 목사는 빈민들에게 맞는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대화를 시도하는 등 ‘의식화’를 통해 그들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도록 했다. 주변 상황과 환경, 사회체제 등을 스스로 의식하고 대응방안을 강구하도록 가난하고 내몰린 사람들의 환경 개선을 위해 일했으나 빈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로 규정하고 억압하던 시절이었다. 이 목사와 가족은 물론 주변 성도들까지 보호감찰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민족의 정기가 폭발한 날 예수 사랑의 정기가 합쳐진 신앙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로 73년 3월 1일 주민교회를 세웠다. 이후 긴급조치 1,2호 발동으로 수감됐던 그는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이후 ‘민주구국선언문’을 복사, 배포한 혐의로 또다시 구속됐다.
그러나 그 후에도 주민실업자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실업자를 구제하고 야간학교를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성남지역 노동운동의 효시가 되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의료보험서비스를 제공하며 주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끈을 놓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신협을 만들었고 경제적 성장과 자립을 돕고 생명공동체를 지향하는 생협을 만들었다. 또 밀려드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상담을 해주다 보니 성남이주민센터도 개소하게 됐다.
“지금은 해방이후 민족의 혼란기로 외부의 강대국이 밀려오는 때이니 깨어있는 국민들이 돈이나 재물이 삶의 목적이 아닌 그것을 넘어선 정의와 평화를 위한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목사는 “생협을 통해 창출된 지역 문화 운동을 토대로 교회와 연계해 새로운 문화운동을 창출해내고 동시에 농촌 생산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고 앞으로 목표를 제시했다.
simdy1219@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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