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기로 한 늦은 저녁, 러시아 연극반 30주년 기념공연을 후배들과 준비하며 함께 삼겹살을 굽고 있는 정초영 KBS PD의 모습은 마치 금방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와 뒤풀이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이제 한평생을 보낸 직장 KBS에서 정년을 얼마 앞두고 다시 한 번 무대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고려대 노어노문학과가 창설된 1974년 1기로 입학한 74학번 정초영 PD는 동아리인 극예술연구회(일명 극회)에 가입해 연극 배우로 무대에 처음 올랐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쳤다. 이게 ‘나의 길’이다 싶었다.

당차고 똘망똘망해 보여 당시 교수님들의 이쁨을 많이 받았다는 그는 1975년 극회의 경험을 토대로 러시아어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러시아어 연극반을 만들었다.

그는 열정 덩어리였다. 연출자는 당시 함께 고려대 극회 활동을 했던 국문과 72학번 이충향 선배를 초빙해왔다.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낭만적인 러시아 연극에 대한 호응은 뜨거웠다. 초연은 안톤 체홉의 ‘청혼’이라는 작품이었다.

학과 학생들도 저마다 배우 또는 스태프로 참가하며 힘을 보탰고, 공연 무대 막이 올라가자 공연장은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고려대 러시아연극연구회의 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초연을 마친 러시아 연극 공연은 1985년 2회 공연이 올라갈 때까지 10여년 동안 암흑 속에 묻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2회 공연을 시작해준 후배들이 고마운 거지. 그들이 다시 시작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30주연 기념공연도 없는 거지.”

졸업을 앞둔 그는 연극 동아리 활동을 바탕으로 방송국 PD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방송 통폐합 전이던 그가 지원한 시험은 동아방송 PD직. 경쟁률이 50대1은 족히 넘었다.

그는 아직도 당시의 실무평가(?) 과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서울의 공기라는 주제로 5분짜리 라디오 방송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오라고 했는데….” 서울 청계천 일대를 쏘다니며 사람들에게 묻고 녹음하기를 수차례. 대답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 상점 문을 열고 다짜고짜 들어가 마이크를 들이밀고 반강제로 녹음을 하기도 했다.

중간 중간 길 모퉁이에 서서는 녹음기에 대고 본인의 목소리로 내레이션도 집어넣었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그의 작품은 오히려 높게 평가받아 최종 합격자 4명 안에 들었다.

“당시 대학 방송국에서 일하던 한 응시자가 방송국 장비를 써서 과제를 깔끔하게 편집해 냈는데 떨어졌다지. 입사 시험에서는 젊은 정신과 패기를 봤던 것 같아.”

옛 얘기에 심취해 있던 후배들에게서 정 PD는 문득 취업난과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요즘 젊은이들의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요즘 참 살기 힘들어졌지. 젊은 애들이 스펙 쌓기에만 골몰하고 산 경험을 도외시하지. 요즘 애들이 참 각박하지.”

그는 다시 그가 PD 생활 중에 좌충우돌하며 겪은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문득 기억난 듯 너덜너덜해진 1975년 초연 당시 대본을 꺼내 후배들에게 건넸다. 후배들이 30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 특별히 요청한 ‘문화재급’ 자료였다.

<김수한 기자 @soohank2> soohan@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