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적과의 동침 (29)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불과 3분, 유호성은 막 피어오르던 불꽃이 다시 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유리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세차 요원들 앞에서 영화를 찍은 꼴이 되어 창피하기 그지없었지만 어항 속에서의 짧은 상열지사는 그런대로 꿈결 같았다. 인어가 된 것 같기도 했고, 고래처럼 부풀어 오른 가슴으로 바다 속을 유영한 것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이젠 어디로 가지?”
“아무 데나, 사람 없는 곳으로…”
온돌이 식기 전에 다시 군불을 때워야 했으므로 그들은 무조건 언덕을 향해 달려 올라갔다. 높은 곳을 향해 가다보면 어디든 두 사람 몸을 숨길만한 곳이 나타나겠지.
“고래도 섹스를 할까요?”
유리가 눈을 반쯤 감은 채 질문했다. 그녀는 아직도 조금 전의 희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눈치였다. 고래도 섹스를 하겠지. 바다 속을 유영하면서도 사랑을 하고, 간혹 수면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면서도 사랑을 이루겠지. 그 얼마나 장엄할까? 인간들처럼 남의 눈치를 보며 숨어서 벌이는 사랑 따위가 아니라 전력을 다해 수면을 차고 날아오르면서 극치에 이르는 사랑!
“하겠지. 고래도 포유류니까.” 유호성은 얼렁뚱땅 대답했다. 지금 고래가 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왈가왈부 할 때가 아니란 표정이었다. 마침 적절한 장소를 발견했는지 그는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더니 핸들을 천천히 돌려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저기가 급한 불을 끄기에 좋겠어. 저기에도 덩치 큰 포유류가 있군.”
“어디요?”
“축사. 마침 한 칸이 비어있어.”
차가 멈춰 선 곳은 자그마한 축사 앞이었다. 평소 세 마리의 소를 키우던 곳인지 축사 내부에는 기둥을 가로질러서 세 칸으로 구분을 해 놓은 상태였다. 마침 소는 두 마리 뿐이었고, 가운데 칸은 여물통만 안쪽으로 놓여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방해할 사람들은 없을까요?”
“글쎄, 비탈길을 올라오는 동안 사람모습은 보질 못했어요. 한 3분은 올라 왔을 걸? 저 밑에서부터 누가 올라오려면 20분은 걸릴 거예요. 그러니까…”
빨리 밀린 숙제를 하자는 뜻이었다. 유리도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왜 이럴까’하는 노래가사를 되 뇌일 뿐이었다. 내가 왜 이럴까? 아버지 강준호와 작당해서 유민 제련그룹에 복수를 하리라고 다짐한 내가 어쩌자고 이렇게 순순히 유호성을 따르는 것일까?
“그런데… 호성 씨. 우리 정식으로는 처음 만난 사이잖아요?”
짐짓 두려운 마음이 생겨난 유리가 이렇게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불이 붙은 유호성은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축사 가운데 칸으로 들어갔다. 입구로부터 시작해서 반 이상이나 차로 막아놓았으니 여물통 앞으로 아늑한 공간은 조성되었지만 몸을 돌리기도 힘들 만큼 좁은 것이 흠이었다. 밖에서 보면 소 두 마리와 자동차 한 대가 엉덩이를 밖으로 향한 채 어울려 여물을 먹는 형상이었다.
“사랑이란 원래 우주선처럼 환한 빛으로 들이닥치는 거예요.”
이렇게 얼버무리며 유호성은 그녀를 번쩍 안아 보닛 위에 얹어놓았다. 아!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다급했던 것이다. 원래 스피드를 추구하는 드라이버이기 때문일까? 그녀의 윗도리를 벗기는 데에도 1초, 자기가 웃통을 벗는 데에도 1초밖엔 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자, 유리 씨. 한번 합시다. 그런 뒤에 골프를 칠지 말지 생각해 봅시다.”
하지만 자동차의 보닛이 예상보다도 훨씬 뜨겁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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