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2회> 죽음의 계곡 4
빠르다, 뜨겁다!
이 얼마나 화끈한 표현인가? 영사막에는 배기 시스템을 통해 꽁무니에서 불을 뿜으며 빠르게 코너로 진입하는 F1 머신이 실물처럼 달려나가고 있었다. 입체로 보이는 3D의 효과는 대단했다. 배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애프터 파이어의 불꽃이 마치 머리카락이라도 태울 것처럼 화르르 눈앞에서 타오르자 기자들은 환성을 질렀다.
“이토록 멋진 경기가 또 있을까요? 수컷의 본능을 자극하는 야성적인 경기라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정말이지 모터스포츠야말로 섹스보다도 짜릿하고 뜨거운 경기입니다. 진정한 사나이들의 경기지요.”
직접 브리핑에 나선 유민 회장은 레이저 펜을 위 아래로 쏘아대며 자동차 경주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즉흥적으로 시도한 브리핑이었지만 그의 목소리엔 확신이 가득 담겨 있었고 태도 또한 우아했다. 역시 산전수전, 공중전에 두루 뛰어난 역전의 용사였다.
“정말 섹스보다도 짜릿합니까?”
“물론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유민 그룹에서는 골프 팀을 만들었다던데… 헛소문이었습니까? 모터스포츠 팀을 창단하신 겁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유민 회장은 빙긋이 웃고만 있었다. 마침 기자들이 모여 앉은 자리로 고급 와인과 독일식 수제 소시지가 제공되고 있었으므로 우선 먹고 마신 뒤에 얘기하자는 느긋한 암시였다.
“골프와 연관된 사업도 고려 중입니다만, 기껏해야 여자 프로 한 명을 후원하는 정도입니다. 그 사업은 제 와이프가 심심풀이 삼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격적으로 벌이는 스포츠마케팅 사업은 쇼킹한 랠리 이벤트입니다.”
“랠리경주를 기획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붉은색과 흰색으로 가득한 도시 중국 서안의 사실상 수도라고 알려진 라말라로부터 서쪽으로 차를 달려 고비사막을 넘고 몽골을 지나고, 신의주 국경을 통과해서 북한 땅을 종주한 뒤에 부산까지 달리는 자동차 경주입니다. 부산이 종점일까요? 아닙니다. 대형 선박으로 경주차를 옮긴 후에 일본 동북부 니가타에서 서쪽 끝 히로시마까지 달려보자는 것이지요.”
“파리다카르 랠리만큼 험하고 긴 코스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파리다카르 랠리는 대략 15일간에 걸쳐 9000여 km를 달리는 경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획한 이번 랠리는 그보다도 훨씬 긴 1만여 km를 달리게 됩니다. 물론 사막과 험준한 산길을 넘게 되고 강을 가로지르게 될 것입니다. 차량의 성능과 내구성은 물론 선수들의 인내가 없이는 불가능한 경기지요.”
“북한 땅은 어떻게 통과할 예정입니까? 북한 당국과 협의가 이루어졌습니까?”
“협의가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결과는 희망적이라고 예상됩니다. 다만 도깨비 같은 북한 실정으로 인해 코스를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엔 신의주에서 연해주를 돌아 사할린 땅을 밟게 될 것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유민제련그룹의 기획이 돋보이는 이벤트로군요.”
“더구나 그 대장정을 거치는 경주용 차를 모두 우리 국산제품인 거성자동차로 선택했습니다. 우리 국민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알릴 기회라고 봅니다.”
“역시 기자회견을 자청하실 만합니다. 대단한 기획입니다.”
“그럼요. 그까짓 골프선수 한 명 키워내는 일쯤이야 이번 랠리경기에 비하면 돼지 앞에서 코 까는 격이지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고, 공자님 댁 앞에 헌 책방 차리기란 말입니다.”
유민 회장이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동안, 건물 꼭대기 층에서 기자들을 기다리던 신희영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다과로 준비한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해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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