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회> 죽음의 계곡 9
똥인지 된장인지는 찍어먹지 않고도 구별할 수 있지만, 멍게와 계란은 뚜껑을 따봐야만 제대로 맛을 구별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의 경우도 멍게나 계란과 다를 바 없다. 자동차 마니아인 거성 2세가 권도일을 택한 것은 레이싱의 지존을 영입하려는 목적뿐이었지만, 막상 실무를 담당하는 도종호 상무의 겉과 속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호박 넝쿨을 왜 잡아당기는지 네가 아니?’
도종호 상무는 속으로 이렇게 비아냥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호박넝쿨을 잡아당기는 이유는 1학년 3반 삼식이라 해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넝쿨을 당겨야 호박이 딸려오는 이치, 그것은 권도일을 당겨야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인계의 거물 크리스 뱅글이 딸려오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전설적인 BMW의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과도 친분이 깊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굵직한 분들과 알고 지내십니까?”
“유럽에서 레이싱 수업을 받을 때 그분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클래식 카 한 대가 경매로 시장에 나왔는데 그 차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돈질을 하다가 알게 되었지요.”
“돈질?”
“팝스타 엘비스 프레스리가 서른 살 무렵에 타던 차였지요. 저는 그 차를 구입해서 달려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고, 뱅글은 그 차의 디자인 즉, 보디라인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결국 그 차는 뱅글이 소유했지요. BMW에서 물량으로 지원을 했으니 제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 그러다가 친해진 사이로군요.”
텐 프로 살롱의 VIP룸에 마주앉아 둘이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로비스트 송달민이 도착했다. 그는 신이 나서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하긴 권도일 전무의 거성자동차 영입이 잘만 이루어지면 헤드헌팅 수수료로 3천만 원은 족히 챙길 수 있었으니 입이 함박꽃처럼 벌어질 만도 했다.
“드디어 도원결의가 이루어졌다고요? 축하드립니다. 어이 마담! 도원결의가 성사되었다는데 어째서 복숭아꽃이 한 송이도 안 보여? 예쁜 꽃들 좀 들여보내요.”
송달민은 자리에 앉자마자 꽃부터 주문했다. 꽃! 아름다운 여자. 그러나 권도일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찌 허접한 길거리 꽃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도종호에게 빈틈을 보일까. 지금 당장에야 칼을 빼앗긴 신세지만 곧 계열사 하나를 차지할 열망에 가슴이 뜨거운 비운의 장수 아니겠는가.
엄밀히 따져 보자면 꽃이란 식물의 생식기에 불과한 것이다. 담장에 기어오른 꽃이 봄바람에 꽃잎을 나부끼며 벌 나비를 부르는 모습은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허투루 누워서 가랑이를 활짝 드러낸 채 아무 남자나 기다리는 것과 역시 이치가 같다. 아이큐가 0.1에 불과한 벌 나비는 지천으로 늘어진 꽃향기에 취할지언정 권도일은 비운의 장수로서 결코 헤퍼질 수 없었다.
“난 아가씨 필요 없어요.”
권도일은 애써 손사래를 쳤지만 듣는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침대에만 가면 변강쇠로 돌변하는 분일수록 처음엔 꼭 내숭을 떤다니까요? 무슨 뜻인 줄 알겠어요. 우리 집 상호는 텐 프로지만 제가 일 프로 이내로 골라올게요.”
마담이 총알처럼 밖으로 달려나가더니 마치 능숙한 카우보이가 초원을 달리며 말을 몰듯 20대 초반의 싱싱한 처녀들을 떼로 몰고 룸으로 되돌아왔다. 그러자 두 사람은 신이 났지만 막상 주인공 대접을 받는 권도일은 마음이 짠하게 저려왔다.
“미스 전은 저리로! 미스 안은 안쪽으로! 미스 최는 최고로 잘생긴 사장님 옆으로! 나머지는 뒤돌아서 고향 앞으로!”
마담의 손짓에 따라 파트너를 찾아 앉은 아가씨들은 싱그러웠다. 종일 사업 이야기에 혈압을 올리다가 새삼 젊은 아가씨와 짝지어 앉게 된 도종호, 송달민은 막걸리에 담아놓은 해삼처럼 팽팽하게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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