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6회> 죽음의 계곡 28
“2500억원이란 돈을 무작정 뿌린다고 해서 파이가 저절로 커지지는 않아요. 애초에 기획했던 대로 언론 활용을 잘 해야지요. 카메라의 중심에 아드님을 세우기 위해서는 당장에 일본 연수부터 시켜야 한다니까요?”
“잘 알고 있어요. 일단 호성이를 레이싱 선진국 일본으로 보내서 목숨을 담보로 하는 프로정신을 키워야 한다고 했지?”
“그래요. 호성 군이 레이싱에 두각을 나타내야 인기몰이를 할 수 있어요. 월드컵 경기 때도 우리나라가 8강에 올라서면서부터 전 국민이 축구에 열광했지요. 피겨스케이팅 경기 때도 그랬어요. 김연아 선수가 있기 때문에 온 국민이 피겨에 열광했지 사실 그 이전엔… 찬밥 신세였잖아요.”
현성애는 입에 거품이 일도록 열변을 토했다. 유민 회장을 알거지로 만드는 일이라면 까짓 거품 아니라 피를 토한들 어떠하리.
“F1 경기장의 평균 관중은 25만명쯤 되지요. 한 해 스무 경기를 치르니까 400여만명이 F1 서킷으로 모여든다는 계산입니다. 더구나 188개국으로 TV중계가 되니 최소한 수억명이 관전하는 글로벌 다이나믹 스포츠라고요. 유럽, 북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6대륙이 F1에 열광하는데 경제 규모로 보면 연간 후원금만 3조원이 넘어요. 정말 어마어마하지요.”
“그건 F1 경기에 한한 이야기지. 이번에 우리가 벌이는 사업은 일반 상용차로 대륙을 달리는 랠리경기인데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까?”
“한번 고기 맛을 본 사람은 소고기, 돼지고기를 가리지 않아요. F1이나 랠리경기나 뭐가 달라요? 초대형 스포츠 축제이긴 매 한가지이죠.”
현성애의 설명을 유심히 듣고 난 유민 회장은 본격적으로 아들 유호성의 장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호성이야말로 아마추어 레이서로서의 경력은 출중했지만 메이저급 무대에서 바로 뛰기에는 여러 난점들이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일본에 갈 때 동반자 한 명쯤 딸려 보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손꼽히는 드라이버가 누구지?”
“이왕이면 포뮬러 카를 경험해본 선수가 좋겠지요. 최명길 선수 정도? 현재 유럽에서 F3에 참여하고 있고 재작년 시즌에는 전체 4위를 기록했거든요. 하지만 독일 국적인 그 선수를 호성 군의 동반자로 데려올 순 없어요. 그림의 떡이지요.”
“할 수 없지. 다른 선수는 없을까?”
“F3와 GP2까지 두루 섭렵한 선수로 재일교포인 주대주 선수가 있긴 해요. 하지만 그 선수 역시 그림의 떡이에요. 유경욱 선수는 어떨까요? 국내 리그인 GTM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포뮬러 BMW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선수이긴 한데…”
“그런데?”
“역시 호성 군과 함께 뛰라면 콧방귀나 뀔 거예요. 유학파 장순호 선수, 일본 슈퍼GT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진우 선수들도 좋긴 한데 역시… 콧대가 높을 거예요.”
“환장하겠군. 모두 다 그림의 떡이면 날더러 어쩌란 얘기야?”
유민 회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많고 많은 떡이 모두 그림 속에 있다니… 아무리 화려하고 럭셔리한 물건이라도 돈으로 구할 수 있지만, 레이싱 선수의 높은 콧대는 억만금을 주고도 누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회장님, 제가 있잖아요. 드라이버와 미캐닉의 고급 노하우를 권일주 사장으로부터 전수받은 현성애가 여기에 있다고요. 저를 아드님의 동반자로 써주신다면… 아드님의 출세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게요.”
현성애는 드디어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유민 회장은 한동안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우리나라 최고의 튜닝 전문가이면서 랠리 선수였던 권일주의 후계자였으니 믿을 만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어폐가 있었다. 아들의 동반자이기 이전에 그녀는 이미 자기의 몸친구 아니었던가. 그런데 뭐가 어째? 몸도 바친다고? 이런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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