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죽음의 계곡 (35)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어린 계집애 하나 때문에 분위기가 군대식으로 바뀌어버렸지만 강준호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는 역시 골프실력 만큼이나 인생의 질곡을 헤쳐 나가는 데에도 프로였다. 어차피 신희영과는 몸을 주고받는 친구이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점수를 따두어야 할 상대는 유한솜이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유한솜…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유민 가문의 외동딸 아니겠는가.

“이 골프장을 전지훈련의 첫 번째 코스로 택한 이유가 뭐지요?”

신희영은 여전히 까칠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손을 뿌리칠 때에 은근한 기색이라도 보였어야 하는 것을…

“멘토 훈련에 제격이기 때문이지요.”

“멘토 훈련?”

“이를테면 정신집중을 훈련하기에 제격이란 말입니다. 특히 3번 홀이 절정입니다. 거기는 파3홀인데 거리가 무려 200야드에 달하지요. 문제는 티잉그라운드와 그린 사이로 흰 파도가 철썩거리며 드나든다는 겁니다. 흰 거품이 몰려다니고, 바람도 세고… 정신없습니다. 그 와중에 티샷을 하니 백이면 백 모두 물에 빠뜨리게 되지요.”

“어려운 골프장 맞네.”

“그래서 멘토 훈련이 된다는 겁니다. 퍼팅 할 때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요. 파도소리에 흥분하고, 바람소리에 넋을 잃다보면 트리플보기는 예사니까요.”

“그럴 땐 멀리 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까요?”

계속되는 신희영의 까칠한 질문에 강유리가 거들고 나섰다. 아버지에게 깍듯이 존대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터인데도 그녀는 연극대사 외우듯 잘도 대처하고 있었다. 독한 년 같으니…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지내야 할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지요. 가끔씩 바다거북이가 둥둥 헤엄을 치고 있으니 그 아름다움에 오히려 넋을 빼앗깁니다. 그뿐인가요? 알록달록한 열대어 떼가 헤엄치는 모습이 그대로 들여다보이고, 가마솥 뚜껑만이나 한 가오리가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유영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래서 아예 먼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이번엔 고래가 수면을 뚫고 뛰어오르는 모습에 탄복하게 되니 퍼팅은 엉망이 될 수밖에요.”

“하늘을 보면 되지요?”

“하늘엔 뭉게구름이 자주 끼는데… 그 틈으로 싱싱한 고등어처럼 생긴 비행기가 떠있기라도 하면… 아이고! 그 아름다움에 홀려서 백 타를 넘기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건조한 지역이면서도 무지개가 자주 뜨는 데요… 만약 코발트색 하늘에 걸린 무지개라도 보는 날엔 조건 없이 108타를 치게 됩니다. 아름다움의 번뇌에 휘말리게 되거든요.”

“그럼 어떡해요? 강 프로님. 눈을 감고 치나요?”

“눈을 감으면 새 지저귀는 소리가 귀에 가득히 들려옵니다. 이곳의 새들은 목청도 좋아요. 특히 카디날이라고 하는 새는 목소리가 가수 뺨칩니다. 귀를 막고 쳐도 안 되지요. 사방에서 출몰하는 칠면조 떼와 충돌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푸르메르 꽃의 향기는 어찌나 향기로운지 코를 막기 전에는 그 향기에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저래 백 타를 넘기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럼 어찌해야 될까요?”

“그 모든 아름다움을 이겨내는 훈련! 그게 바로 이번 첫 코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한없이 담담해질 줄 아는 힘을 키워야만 합니다.”

강준호는 속으로 앗싸, 가오리!를 외쳤다. 어쩌면 이리도 훌륭하게 연설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연설이 훌륭했으면 유한솜은 감탄하여 벌린 입을 미처 다물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면 됐다. 첫술에 배부를 리야 없겠지만, 이정도 본때를 보였으니 약발이 열흘은 갈 것이다. 열흘 뒤의 일은? 에라 모르겠다.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