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의 몸짓은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몸짓은 처연했고, 너무 아름다워 또 슬펐다. 남자의 배신 때문에 미쳐가는 비련의 여인. 가슴 속에 사랑을 담은 슬픈 요정의 모습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한국의 발레리나 서희(25)가 미국을 홀렸다.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솔리스트 서희는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링컨센터 오페라 극장 무대에서 여성 무용수의 꿈이라 불리는 ‘지젤’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날 서희의 ‘지젤’ 첫 공연은 3000여 관객의 환호와 기립박수로 가득찼다.

서희는 한국인 최초로 ABT의 단역에서 주역으로 승급된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그동안 강예나 안은영 등 한국의 무용수가 ABT 단역으로는 활동했지만, 솔리스트로 승급돼 주역으로 데뷔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양인들의 독무대였던 지젤의 주역으로 동양인이 발탁된 것도 이례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2005년 ABT에 입단한 서희는 6년간 코르드발레(단역)로 활약했고, 2009년 ‘로미오와 줄리엣’ 당시 주역인 줄리엣 역을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무대는 그가 지난해 솔리스트로 승급한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파격적인 발탁은 ABT 내부에서의 평가전이었던 셈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 발레를 접한 그는 발레 입문 3개월만에 국내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중2 때 미국 워싱턴 키로프발레 아카데미로 넘어갔고, 2003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미국 ABT와 독일 슈트트가르트로부터 둘다 입단 제의를 받아 고민끝에 ABT행을 택했다. 보다 넓고 자유로운 미국이라는 배경과 스타 양성으로 유명한 ABT 발레단의 특성을 고려한 아버지의 조언에 따랐다.

결과적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과정은 그의 경쟁력이 됐다. 유럽과 미국의 발레 스타일을 모두 배워 스펙트럼이 넓은 춤을 추는 것은 서희의 강점이다. 또다른 강점은 유독 아름다운 몸과 표현력. 발레리나로선 작지도 크기도 않은 168cm의 키에, 팔다리가 길고 유연하며, 몸의 선이 매우 곱다. 발레리나에겐 발등이 나올수록 예쁜 발로 통하는데, 발등이 유독 튀어나왔고 발 라인이 예뻐 ‘한국에서 100년만에 나올까 말까한 발’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번 ‘지젤’ 무대에서도 서희의 아름다운 몸은 빛을 발했다. 무용수의 목에서 어깨를 거쳐 팔로 떨어지는 선을 가리켜 ‘지젤 라인’이라고 하는데, 그는 이번 무대에서 독보적인 ‘지젤 라인’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