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인정사정 볼 것 없다 (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김지선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유호성에게 이별을 선언하고야 말았다. 도종호 상무가 예견한 그대로였다. 무 자르듯이 단칼에 등을 돌린 것으로 보아 목포의 대중목욕탕에서 당한 수모가 뼈에 사무치는 모양이었다.
‘유호성! 비겁하기 짝이 없는 인간. 앞으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야. 안녕!’
그녀는 스마트폰을 통해 너무도 간단한 이별문자를 날렸다. 원래 짧은 편지는 긴 이별을 예고하는 것. 그 짧은 이별문자의 이면에는 거성자동차의 러브콜을 적극 수용하리라는 의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실현가능성 없는 재벌 아들과의 결혼, 불확실한 재벌가문의 며느리자리… 이런 불투명한 환상에 빠져 유호성의 바지자락에 매달리느니 확실하게 움켜쥘 수 있는 강남의 아파트를 선택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잘한 짓이었다.
“아무렴, 잘 한 일이지. 그뿐인가? 꿈에도 그리던 후륜구동 승용차까지 덤으로 한 대를 얻을 판이니… 엄청 잘 한 짓이고말고.”
그녀는 흔들리는 마음을 이렇게 추스르며 거성자동차 회장실로 찾아가 랠리팀의 코-드라이버가 되기 위한 입단서약서에 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환영합니다. 김지선 양.”
거성자동차 재벌 2세가 악수를 청하자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거성자동차 홍보실 직원들과 사보기자, 그리고 스포츠 신문 기자, 일간지 경제부 기자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재벌 2세로부터 악수를 청해 받다니… 김지선은 순간 가슴이 뿌듯해져 옴을 느꼈다.
“김치! 김치~ 해보세요, 김지선 씨.”
이래서 사람팔자는 염라대왕도 모른다고 했던가? 가슴이 벅찰 대로 벅차오른 김지선은 카메라에 얼굴을 마주향한 채로 얼짱 각도를 연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 좋다. 미모도 좋고 몸매도 좋아요. 이렇게 포토제닉한 모델이 자동차 경주에 나선다니 앞으로 신문을 펴면 온통 우리 랠리팀 기사로 도배를 하겠군요.”
재벌 2세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도종호 상무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모든 일이 자기가 꾸민 대로 척척 이루어지니 가만히 있어도 웃음을 참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 왜 미녀와 야수라는 만화영화가 있지 않습니까? 딱 그거예요. 야수처럼 불에 그을리고 상처 입은 차를 아리따운 미녀가 운전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컨셉이 살아난단 말입니다… 허허허.” 미녀와 야수? 불에 그을린 차? 재벌 2세의 수수께끼 같은 말이 궁금했지만 김지선은 애써 미소만 짓고 있어야 했다. 그러던 중에 마침 랠리의 남자 주인공인 드라이버 권도일과 가벼운 포옹을 하며 사진촬영 하는 순서가 찾아왔으므로 그제야 권도일에게 귓속말로 물어볼 수 있었다.
“야수처럼 불에 그을고 상처 입은 차가 뭐예요?”
“계약 조항에 그런 내용이 없었나요? 그게 이번 랠리에서 우리가 몰아야 할 머신이지요.”
“밀리터리 룩의 신형 차인가요?”
“아니요. 사막에서 살아 돌아 온 1974년산 치타를 우리가 몰 예정입니다.” 김지선은 그러나 더 이상은 물어볼 수 없었다. 기자들이 사방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며 브라보!를 외치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삼수갑산엘 갈망정 당장엔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것이 모델의 본분이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신문기사를 본 유민 회장은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아들 유호성으로부터 그녀를 멀찌감치 떼어내려 하지 않았던가. 김지선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금전이나 완력을 동원해서라도 일을 치를 판이었는데 제풀에 알아서 떨어져 나갔으니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기분이었다. 당연히 그는 이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현성애에게 알렸는데… 원수의 자식에게 젖 물리는 꼴인가? 그 배후에 현성애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4000만원 낼 세금을 1억 넘게 물다니…‘상속세 0원’이라도 꼭 신고해야 하는 이유 [이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news-p.v1.20260903.e72e37cbc9ac475abd6197c15b096a38_T1.png?type=h&h=240)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