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2

현성애와 권도일… 이른바 5대륙 관통 랠리의 최대 라이벌인 그들이 1974년산 치타를 몰고 처절한 시운전을 감행하는 동안 유호성은 여전히 유도 4단과 특공무술 3단짜리 감시단원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나만 괴롭히면 뭐합니까? 5대륙 관통 랠리는 코-드라이버와 한 조를 이루어서 뛰는 경기인데… 파트너도 없잖아요, 나는.”

“괴롭히다니요? 말씀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저희는 회장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뿐이고… 또한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시켜 드리는 겁니다.”

“말 꼬리 잡지 마세요. 나는 파트너와 함께 훈련 받길 원한다고요. 당장 아버님께 말씀드리세요. 새로운 파트너 구해 달라고 말입니다.”

“파트너가 도망간 걸 우리가 어쩝니까? 김지선인가 뭔가 하는 그 여자가 도망간 건 오로지 도련님 탓입니다.”

“정말 너무하시네요.”

“너무하신 건 회장님입니다.”

“왜요? 우리 아버지가 뭘 너무 했는데요?”

“도련님이 이번 랠리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우릴 쫓아낸다고 하셨단 말입니다. 우리도 알고 보면 불쌍한 청춘들예요. 그러니 잔말 마시고… 훈련 합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날계란 두 알 먹고 20㎞를 걷는 일은 어느덧 이력이 난 상태였다. 까짓 숨이 턱에 닿도록 내달리는 것도 아니니 오뉴월, 불알 늘어진 소처럼 어기적 어기적 걸음을 옮겨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뜨거운 사우나에서 버티는 일도 이제는 식은 죽 먹기였다. 까짓 날 삶아 먹어라! 하고 속으로 외치면서 정신 줄을 놓아버리면 두 시간 정도야 후딱 지나가곤 했던 것이다. 오히려 서늘한 밖으로 나서면 현기증이 생기곤 했으니 사람의 적응력이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게만 여겨졌다.

아령 들고, 역기 드는 일 따위도 별게 아니었다. 처음엔 5kg짜리 아령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곤 했지만 이제 그 정도쯤이야 손가락 사이에 넣고 연필 돌리듯 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내심 자신감이 생겨나기도 했다는 말이다.

문제는 유도 4단과 특공무술 3단이 나날이 새로운 훈련 방법을 제시하는 통에 기진맥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줄수록 양양이었고 갈수록 태산이었다.

“레이스란 서킷 노면에 떨어진 타이어 조각이나 오일자국 까지도 감각으로 느껴야만 하는 정신과 감각의 게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킷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 페인트 자국, 타이어 자국, 긁힌 자국… 뿐만 아니라 그 아스팔트 위를 스치는 바람, 혹은 빗방울, 싸라기눈까지도 마음으로 느끼고 감각으로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유도 4단이 두꺼운 메모 첩을 들추며 느릿느릿 읽어 내려갔다. 여기까지는 아마도 회장님의 지시에 따라 어디선가 기록해 온 내용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좋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유호성이 겁을 먹고 있는 까닭은, 언제나처럼 유도 4단과 특공무술 3단이 그 내용을 이상하게 해석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럼 오늘부터 새로운 훈련에 돌입합니다. 이른바 감각훈련! 도련님은 면장갑 끼고 나를 따라 오세요.”

“면장갑은 왜 필요해요? 무슨 훈련을 하려고요?”

“아스팔트 위에 긁힌 자국, 타이어 자국 등을 자세히 보고 온몸으로 느끼려면 네 발로 기어야지요. 이렇게 말입니다.”

유도 4단은 아스팔트 위에 두 손을 짚고 엎드리더니 살찐 개처럼 뒤뚱뒤뚱 걷기 시작했다. 아뿔싸!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호성은 정신이 혼미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모르긴 해도 고지식한 유도 4단은 그렇게 쪼그려 엎드린 채로 20km를 걸어야만 한다고 우길 것이 분명했다.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해 올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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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