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대모’ 이소선 여사 별세…7일 발인
180번 법 어기고 3년이나 옥살이…
각계 각층서 조문행렬 줄이어
고(故) 전태일 열사의 모친으로 지난 3일 별세한 이소선 여사는 40년 넘게 ‘노동운동의 대모’로 살아왔다. 향년 82세로 아들이 못다 한 노동 해방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
그는 노동운동이 있는 곳에 항상 있었고, 민주열사 유가족들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1929년 대구 달성군에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이 여사는 지난 1970년 11월 아들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친 뒤 분신하자 민주화와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22세 나이로 분신한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으니 그 누구보다도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청계천 피복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했고, 고문에 추대됐다. 아들이 못다 한 일이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왔고, 그리고 치열하게 싸웠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나서 그는 180번이나 법을 어겼고, 3년여의 옥살이를 했으니 그 치열함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들을 통해 이 땅의 노동자들이 살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게 됐고, 몸소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온 셈이다.
이 여사는 1986년에는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98년에는 ‘의문사 진상 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을 위한 422일 천막 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가 못다 한 노동 해방과 민주화 운동을 그는 더욱 끈질기게 해왔다. 이 같은 사회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이 여사는 지난 88년 ‘선한 마리아인상’, 90년 ‘4월 혁명상’ 등을 받기도 했다.
이 여사의 딸인 전순옥 씨는 어머니의 모습을 두 가지로 회상했다. 하나는 노동운동을 외치는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항상 따뜻하게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전 대표는 “어머니는 모든 이에게 전화할 때면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10대부터 70~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어머니를 찾았지만 누가 와도 반기셨고 그분들을 보는 일을 삶의 의미로 여기셨다”고 말했다.
이 여사의 장례는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오는 7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하며, 영결식은 이날 오전 10시 대학로에서 열리고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노제를 지낸 뒤 장지인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하며 진행된다.
앞서 5일 오후에는 시민사회단체 인사 등을 중심으로 청계천 전태일다리를 출발해 전 열사가 분신한 장소와 창신동 전태일재단 사무실, 이 여사 자택 등을 거쳐 서울대병원 영안실로 오는 ‘어머니의 길 걷기’ 행사가 열린다. 또 6일 오후에는 제주 강정마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앞 등에서 추모의 밤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박도제 기자/pdj24@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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