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은 비표준어’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잡던 중
표준어 인정 또다시 혼란 조장
소주→쏘주 고추→꼬추
된소리왕국 언어문화 심히 걱정
성정까지 거칠어져 악순환
될 수 있으면 예외 적어야
정확한 우리말 쓰기 노력 절실
홍길동은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했다. 지사의 마음을 가진 일부 중국집 주인들은 꺾이지 않겠다는 기세로 메뉴판에 ‘짜장면’을 써붙여 놓았지만 졸이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독립운동하듯 모두가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쉬쉬 부르던 어느날, ‘자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를 것을 허한다’는 국립국어원의 갑작스러운 결정이 내려졌다. 2011년 8월 31일 국립국어원이 39개 복수표준어를 내놓으면서 ‘자장면이냐, 짜장면이냐’의 문제에 ‘둘다 맞다’며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네티즌들은 8월 31일을 ‘짜장면 광복절’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짜장면 먹는 모습을 찍은 ‘인증샷’을 올렸다.
논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유일 표준어 였던 ‘자장면’을 의식적으로 쓰는 등 바른 말 노력을 계속해 온 사람들은 허탈해지기도 한다.
올바른 한글 사용을 주장하며 방송에서 줄곧 ‘자장면’을 사용해 온 방송인 정재환(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씨. 그는 ‘짜장면’에 대해 할 말이 있었다. 정대표는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한글문화연대를 만들었고 늦게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이승만 시대의 한글간소화 파동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바른말 사용을 주장하는 우리말 지킴이로서 ‘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우리말은 우리의 밥이다’등의 책을 썼다.
정대표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짜장면을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국립국어원의 이번 결정은 조금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앞으로도 사람들이 편한 대로 쓰고 있는 말이 맞다고 단정적으로 생각하면 어쩌겠나. 원칙이 있어야 되며 가능한 예외가 적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복수표준어로 인정받고 있는 ‘상추’를 예로 들며 평생을 ‘상치’로 쓴 친구이야기를 했다. 그는 “1988년 이전에는 ‘상치’가 맞는 말이었다. ‘상추’가 표준어가 되면서 ‘상치’가 비표준어가 돼버린 건데 오랫동안 ‘상치’를 써 온 내 친구는 이에 대해 ‘배신감’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정대표 스스로도 덜컥 짜장면을 인정해 버린 국어원의 결정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는 얘기다.
그는 짜장면을 복수표준어로 인정한다는 국립국어원에 발표가 나오자 개인 블로그에 “내게는 정말 큰 소식이다. 물론 반가운 소식도 아니고 그렇지 않은 소식도 아니다. 방송에서도 일상에서도 자장면과 짜장면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뭘 먹어도 괜찮다. 사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의 시시비비는…”이라고 올리기도 했다.
정 대표는 “이번 국립국어원의 결정이 사람들의 정확한 우리말 쓰기 노력을 헛되게 하는 게 아닌가”라는 얘기를 했다. 그는 이어 “횟집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모듬회’는 표준어가 아니며 정확히는 ‘모음회’다. 모음회가 표준어로 자리 잡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장면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짜장면이라고 썼지만 자장면으로 쓰자는 노력을 하고 있었고 대중들의 머릿속에 적어도 ‘짜장면은 표준어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리잡아가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국립국어원이 둘 다 인정해 버렸다”며 허탈해 했다.
정 대표는 ‘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 이라는 책을 펴내 자장면 논쟁에 불을 지폈다. 가수 배철수 씨, 최백호 씨와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자장면 얘기가 나온게 발단이었다. 그는 “1999년 어느 날, 방송이 끝나고 밥을 먹는 자리였다. 그때도 짜장면이냐 자장면이냐를 두고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 배철수 씨가 어렸을 때는 자장면이라 썼다고 하더라. 근데 최백호 씨는 그걸 기억을 못했다. 돌아가서 오래된 기사를 찾아보니, 기사의 반은 짜장면, 반은 자장면으로 표기돼 있었다. 당시에도 자장면과 짜장면을 사람이 혼재했던 거다”고 했다. 그는 1988년에 정한 한글 맞춤법에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 표준어인 걸 확인 한 후, 관련책도 쓰고 방송 등에서 ‘자장면’이란 말을 의식적으로 사용했다. 정씨는 “탤런트 조형기 씨가 정 대표의 책을 본 후 드라마 대본에서 “자장면 두 개요”라는 대사를 써야 할지 고민하다 “짬뽕 두 개요”라며 쓰고 말았단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그의 노력이 선ㆍ후배에게 전해진 것이다.
정 대표는 2000년에 쓴 ‘우리말은 우리의 밥이다’의 ‘된소리 왕국’이란 꼭지에서, 표준어인 자장면을 된소리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짜장면으로 발음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정대표는 책에서 “지금 우리는 된소리 왕국에 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추는 꼬추로, 동그라미는 똥그라미로, 소주는 쏘주로…(중략). 말할 때 자꾸 된소리를 내고 센소리를 내면 성정마저도 거칠어진다는 것이 일찍이 여러 언어학자들이 주장한 바다”라고 썼다.
정대표는 “국립국어원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말 규범에 맞는 단어를 사용하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일부에선 ‘10년 만에’ 인정됐다고 하지만 이런 건 ‘10년이나’걸려야 한다. 새로운 말들이 쏟아지고 매번 표준어를 제정한다면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유행어가 쏟아진다고 나올 때마다 표준어 사전에 올리면 되겠냐”고 반문했다. 정 대표는 ‘짜장면’에, 국립국어원에 정말 할말이 많다.
박병국 기자/cook@heraldm.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m.com
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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