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창출 생산활동 아닌
흥행성 극대화 위한 행위
인기 등 특수요인이 보수 결정
구단과 대등한 관계서 계약
기업 노사 종속관계와 달라
고용부, 근로자로 인정 안해
美MLB 배타적 교섭단체 인정
파업 등 통해 근로조건 개선
오는 31일 한국시리즈 5차전이 펼쳐지는 잠실야구장은 최근 석면 문제로 심한 홍역을 앓았다. 그라운드에서 기준치 이상의 석면이 검출되면서 야구 선수와 심판, 그리고 관중에게 예상치도 못한 걱정을 끼쳤다. 특히 프로야구 선수들 입장에선 그동안 열심히 슬라이딩하면서 땀 흘렸던 기억이 일순간 공포로 바뀌기도 했다.
다행히 경기를 앞두고 운동장 흙은 교체될 예정이지만, 그동안 잠실운동장을 달렸던 야구 선수가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조용한 암살자’로 불리는 석면을 밟고 뛰어온 야구 선수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약 석면이 검출된 잠실ㆍ사직ㆍ문학구장에서 오랫동안 뛰어온 선수들에게 관련 질병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산업재해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일반 근로자의 경우 석면과 업무 연관성만 있으면 산업재해 보상이 이뤄진다. 야구 선수도 석면이 검출된 야구장에서 오랫동안 뛰어왔기 때문에 산재 보상을 받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설명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 선수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야구 선수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근로자가 아니면 당연히 산재보험 적용 대상도 아니다.
이처럼 프로야구 선수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는 선수들의 권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지병으로 사망한 최동원 한화 2군 감독이 선수 시절 선수노조를 만들려고 했던 것도 이 같은 야구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로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선 어떠할까. 당연히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은 근로자로 인정받는다. 메이저리그선수노조(MLBPA)가 설립돼 있어 야구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한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선수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선수협의회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똑같은 프로야구 선수인데, 미국에선 근로자로 인정받고 우리나라에선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국과 미국의 근로자 및 노조 인정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근로자로 인정돼야 근로기준법 등의 보호를 받게 되지만, 미국에선 사용자로부터 배타적 교섭단체로 인정받으면서 노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근로자 기준에 맞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에서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육체근로자든, 정신근로자든 상관없이 근로의 대가로 주어지는 임금ㆍ봉급 등 일체의 금품을 받고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일하면 근로자로 인정받는 셈이다. 야구 선수들도 연봉계약을 맺고 구단의 지시에 따라 경기에 나서며 훈련을 받는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분명히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을 실제로 집행하는 고용노동부는 다르게 해석한다. 3가지 이유로 야구 선수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우선 야구 선수들의 땀은 순수한 의미의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 프로 운동경기는 대중 인기에 영합함으로써 흥행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활동인 순수한 의미의 노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은 근로기준법상 임금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프로 선수의 입단계약 시 체결되는 계약금 및 보수는 개개 선수의 대중 인기 등 특수 요인에 따라 그 수준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노동의 질을 결정하는 학력ㆍ경력ㆍ연령ㆍ숙련도 등 복합적인 요소에 의거 결정되는 근로기준법상의 임금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프로야구 선수와 구단주와 관계가 일반적인 기업의 노ㆍ사 간 사용종속관계와 다른 것으로 파악한다. 프로 선수는 구단주 및 감독의 지휘하에 있으나 이는 경기의 흥행 성공을 위한 개개 선수의 능력을 기술적으로 결합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근로기준법상 노ㆍ사 간의 근로관계로 상ㆍ하 간 이뤄지는 지휘ㆍ감독과는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관계’와 민법이 적용되는 ‘고용관계’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변호사가 소송 의뢰인의 수임료를 받고 움직이지만, 이는 사용종속관계라기보다 대응한 관계에서 맺어진 고용관계”라고 덧붙였다. 야구 선수도 구단주 등과 대등한 관계에서 계약을 맺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사용종속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설명.
오래전 법원 판례에서도 프로 선수의 근로자성을 부정했다. 지난 1985년 서울민사지법에선 프로축구 선수 전속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 배상액의 예정에 다툼이 있었는데, 당시 판결문에선 “프로축구 선수 전속계약은 단순한 근로계약이 아니라 축구 선수로서 경기 출전에 대비한 훈련과 경기 출전만을 임무로 하는 도급적 성격이 짙게 깔린 비전형 무명계약”이라고 판시했다.
이런 판례와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이 근거가 되면서 우리나라 프로야구 선수들은 아직까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노조 설립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지적이다.
근로자성 인정과 노조 설립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미국에서도 프로야구 선수들의 노조 설립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 1966년 설립된 메이저리그선수노조(MLBPA)는 지난 1885년 처음으로 모임을 결성했지만, 세 차례에 걸친 해체와 재건이 있었다.
이후 메이저리그 노조는 엄청난 단결력을 바탕으로 지난 1994년 최악의 파업을 겪기도 했다. 당시 메이저리그노조는 셀러리캡(salary cap) 도입을 둘러싼 구단주들과의 갈등이 파업으로 확산되며 938경기가 취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메이저리그노조는 FA제도 도입, 선수 연금, 최저연봉제 보장, 선수 초상권 등에 걸쳐 노동 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었다.
고용노동부 측에선 “우리나라 야구 선수와 미국 선수들의 근무 형태가 비슷하다고 가정하더라도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며 “미국에서는 해고가 자유롭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한 점 등 똑같은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만 유지하고 있다.
박도제 기자/pdj24@heraldm.com
연예인·보험판매원…학습지 교사도…근로자가 아니라고?
비단 프로야구 선수뿐만 아니다. 연예인, 학습지 교사, 보험판매원, 지입차주, 골프장 도우미 등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근로자성 판정 기준의 시금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지난 2004년과 2006년 대법원이 내놓은 판례. 당시 대법원은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를 고려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도 제시했다. 판례에서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 규칙 또는 복무(인사) 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노무 제공자가 스스로 비품ㆍ원자재나 작업 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독립해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 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ㆍ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기준에 따라 그동안 판례를 통해 근로자성이 인정된 경우는 광고 외근사원, 판매 확장요원, 시청료 위탁징수원, 홍익회가 운영하는 기차역에 설치된 대합실 매점의 성과급 영업원, 드라마 외부 제작요원, 수로관리원 등이다.
반면 한국전력 위탁수금원, 연예인, 학습지 교사, 화물운송차주, 레미콘 자차기사, 가수의 매니저, 보험모집원, 애니메이션회사의 채화 작업자, 장례예식업 접객보조원, 특정 간병인협회 소속 간병인, 채권 추심업무 계약수행자 등은 법원 판결을 통해 근로자성이 부정됐다.
이들 외에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프로 선수를 비롯해 유흥업소 코너주, 피라미드판매회사 종사자, 레미콘 자차기사, 신문사 자율기사, 서울경마장 조기협회 소속 조교사와 기수, 퀵서비스 배달기사, 생활정보지 배포요원, 국가대표 펜싱 코치 등이다.
박도제 기자/pdj24@heraldm.com
![4000만원 낼 세금을 1억 넘게 물다니…‘상속세 0원’이라도 꼭 신고해야 하는 이유 [이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news-p.v1.20260903.e72e37cbc9ac475abd6197c15b096a38_T1.png?type=h&h=240)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