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 끝까지, 죽을 때까지(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언제까지 저 우산을 펼쳐놓고 있을 겁니까? 도무지 운전을 할 수 없잖아요?”

“앞으로 10분이면 돼, 참으라고.”

“벌써 앞 차들 꽁무니도 안 보이잖아요? 지금 경주를 하자는 겁니까? 아니면 영화를 찍자는 겁니까?”

“시끄러워 이 양반아! 어차피 각본이 그렇게 짜여있어. 자네는 죽도록 달리지만 꼴찌로 뒤쳐져야 하는 게야. 그 다음에 내가 나서서 역전극을 펼치자고 이미 약속했잖아. 벌써 새카맣게 잊었어?”

“언제 그런 약속을 했다고 그래요?”

“각본대로라면 자넨 랠리 도중에 발랑 뒤집어져야 한다고. 영화 맨발의 청춘 몰라? 신성일 이 쭉 뻗으니까 트위스트 김이 거적때기에 둘둘 말아서 리어카에 싣고 가잖아. 우리도 그런 스타일로 다큐를 찍잔 말이야.”

유호성은 죽을 맛이었지만 전진후는 갈수록 의기양양, 아예 관광을 나선 사람처럼 소형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위에 늘어선 구경꾼들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몬테카를로 랠리의 출발선인 발랑스 지역엔 수많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으니 카메라만 들이대면 곧바로 리얼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판이었다. 환호성, 박수, 치어걸 차림의 여자들이 모여 단체로 벌이는 응원…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뻗을 때 뻗더라도 이젠 좀 달려봅시다. 제발 저 우산 좀 접어 달라고요. 네?”

“칭얼대지 마라, 이제 1분이면 끝난다.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우승을 향한 각오를 다지는 드라이버의 모습… 캬! 죽이네! 그 장면만 촬영하면 도입부는 완성이야. 자! 필승을 다지는 장엄한 표정을 연출해 보라고!”

직선으로 펼쳐진 도로, 이른바 타마크였다. 어느덧 노면에 살얼음이 끼는 겨울날씨였으므로 유독 코너가 많은 이번 랠리코스에서는 타이어 슬립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유호성의 눈앞에는 쭉 뻗은 타마크가 펼쳐져 있었다.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타마크 구간이 얼마나 될 것인가. 이 상황에서는 rpm을 최고로 높여 한껏 내쏘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심각한 표정을 지으래도? 좀 더… 쫌, 쫌!”

무게중심을 극도로 낮추기 위해 바닥에 납작 드러누워 있어야 할 코-드라이버가 차창 밖으로 상체를 드러내놓질 않나, 카메라 쇼를 벌이질 않나… 도통 정신이 산만해서 운전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전진후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랠리에서는 입상권에 들 재간이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에야 다큐멘터리 영화나 한 편 잘 만들어서 훗날을 도모하는 편이 훨씬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유민 회장도 헬멧에 카메라를 붙이고 리얼한 작품을 만들어 오라고 명령하지 않았던가. 그 점에서는 유민 회장의 생각이나 다를 바 없었다.

“자, 이젠 됐어요? 그림 좀 살아납니까?”

유호성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양 미간을 잔뜩 찡그리는… 이른바 우승을 향한 집념의 표정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미적대다가는 전진후의 주먹이 날아올 판이었으니 알아서 기어야지.

“컷! 됐어, 됐어. 이제 달리자고. 엑셀을 꽉꽉 밟아!”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호성은 엑셀러레이터에 힘을 가했다. 태엽이 힘차게 풀려나갈 때처럼 재규어 XKR이 몇 차례 헛바퀴를 돌더니 이내 콰르르! 앞으로 튕겨나가기 시작했다. 차창 틈에 끼워져 있던 반사용 은빛우산이 바람을 이기지 못해 훌쩍 뒤로 날아가버렸다. 이제 숨을 깊이 들이쉬고… 헤어핀이나 코너가 나타날 때까지 목숨 걸고 앞으로만 치달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도입부 촬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전진후가 뒷좌석 쪽으로 황급히 몸을 돌리며 외치기 시작했다.

“그렇지! 저거야, 저거! 날아가는 우산! 이 차가 시속 200킬로미터로 쏜다는 걸 시청자에게 보이려면 저 멀어져가는 우산을 찍어야 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