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4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29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타이거 우즈를 만나야 할 사람은 강유리였다. 그야 물론 우즈가 저녁식사 초대를 한 사람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나자고 한 적도 없는데 우즈를 만나겠다며 나서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의 매니저 백광돌을 위시해서 유한솜, 한승우 실장, 그리고 이제 방금 콜택시를 타고 들이닥친 신희영, 강준호…. 하다 못해 잔심부름이나 하던 조차장, 천부장에 이르기까지.
“아니, 아버지까지 이러시면 어떡해요? 얼마나 중요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자리에 왜 나서려는 거예요?”
보다 못한 강유리는 아버지 강준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짜증부터 내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길 고용한 오너 신희영이나 그녀의 딸 유한솜에게 짜증을 낼 수도 없는 입장 아니겠는가.
“넌 모르는 척하고 있으렴. 천하의 우즈라도 스카이라운지 전체를 빌리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그러니 우리는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되지.”
“분위기를 보면 몰라요? 그 분이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아요? 왜 이토록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서 일을 망치려 드는지 모르겠어, 정말.”
“망치려 드는 게 아니야. 잘 되려고 하는 거지.”
“신 회장님은 어째서 명함까지 챙기시는 거예요? 기필코 합석해서 인사를 나누겠다는 심보 아니겠어요?”
“그야…사업을 벌이기 위해서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일이야.”
“아버지, 제발…아버지만 믿을게요. 따라 들어오면 안돼요.”
어느덧 약속시간인 7시가 되었으므로 강유리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카이라운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었다. 그녀는 나름대로의 계획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계획을 달성시키기 위한 리허설도 마음속으로 이미 마친 상태였다. 그 계획이란 솔리터리 앤 사일런스! 이를테면 외로움에 지쳐 고요한 상태를 연출하자는 의도였다. 왜냐고? 그야 우즈에게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에는 오로지 신비롭게 보이는 것이 상책. 신비롭게 보이려면 첫째 떠들지 않고, 둘째 경박스럽지 않으며, 셋째 조용히 눈웃음만 치면 될 것이란 배짱이었다. 그 상황 연출을 위해 거울 앞에서 미소짓는 연습을 얼마나 했던가. 그런데…흥부네집 식구들처럼 옆자리에 떼로 몰려와 앉은 사람들 틈에서 무슨 재간으로 솔리터리해지고 사일런스해질 수 있을 것인지.
“웰컴! 나이스 투 미츄, 미스…?”
“캉! 미스 캉이에요.”
영어를 쓰기만 하면 ‘강씨’가 어째서 ‘캉씨’로 변하는지…. 우즈는 조용히 악수를 청했고 강유리는 벅찬 마음으로 그의 악수에 응했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디딜 때도 과연 이런 심정이었을까.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했던 말이 그대로 복제되는 순간이었다.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오늘 신비롭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한 광경을 보았거든요? 내가 골프선수라서 그 모습이 더욱 감동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즈는 이렇게 말하며 와인을 권했다. 물론 버터를 바른 듯한 본토영어 발음이었으므로 강유리가 온전히 알아듣기엔 무리였다. 그녀는 말귀를 잘 알아듣기 위해 본능적으로 귀를 쫑긋 세운 채 고개를 살짝 외로 돌린 상태였다. 그 순간, 아뿔싸! 언제 따라 들어왔는지 옆좌석엔 이미 흥부네 식구들이 잔뜩 몰려 앉아있지 않은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우즈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기색을 보이자 걱정했던대로 신희영이 불쑥 나서고야 말았던 것이다.
“유리야, 뭐가 신비롭고 뭐가 감동적이었는지 물어봐. 저걸 어째…강 프로님, 쟤가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나봐요. 세계적인 LPGA 선수로 출세하려면 일단 영어부터 잘해야 하는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즈는 언제나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예사로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강유리는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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