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장면에 나는 얼굴을 가린다(’Sur la scene du sexe, je m`avance masquee)
간호사, 여변호사, 스튜어디스, 수녀 등 제복을 입은 많은 여성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 제복이 그들을 익명으로 만들기에 사람들을 더 흥분시키는 것이다. ‘에로틱한 제복’과 관련된 성적 환상들을 정리해보자.
1887년에 프랑스인인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는 자신이 ‘제복의 연인들’이라고 시적으로 표현한 의복 애호가들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사랑 속의 페티시즘’이란 책 속에서 비네는 그 누구도 페티시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단순한 생각을 피력한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모든 관심을 페티시즘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단순한 성행위가 아닌 다른 것에서 우리가 에로틱한 쾌락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나체 대신 옷 입은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엔디토필리아(endytophilie)’를 즐기는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흥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일생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옷을 걸치고 있다.
거리, 지하철을 비롯한 도처에서 우리를 스쳐 지나치는 사람들이 제복이나 아주 전형적인 옷을 걸치고만 있다면 상상 속의 여주인공으로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성적인 존재로 변장하는 놀이에서 전통적으로 다음의 8개 직업군이 수위 자리를 다투고 있는 중이다.
1. 간호사 목소리 분석가인 알랭 에릴(Alain Héril)이 ‘성적 환상 사전’ 속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의사는 아버지 목소리를 대변한다. 명령하고, 결단을 내리며, 결정하고, 때로는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의사의 회진시간 사이에는 간호사, 곧 에로틱한 요소가 가미된 어머니의 법칙이 지배한다. “간호사는 붕대를 감아주고 응석을 받아주다가도 냉대합니다. 때로는 만져주기도 하지요. 또 우리에게 환자용 변기를 갖다 주고, 옷 입는 것을 도와줍니다.”
사려 깊고도 관능적인 동시에 엄마 같은 존재인 간호사는 병을 고쳐주는 여성의 에로틱한 잠재력을 무한히 보유하고 있다. 사람들은 위안을 얻기 위해 그녀 품속으로 들어가고, 수치스럽고도 내밀한 곳을 그녀가 손댈 수 있도록 자신을 내맡긴다. 지배욕이 강한 그녀는 체온계로 우리 항문을 침범하고, 바늘로 우리 팔을 찔러댄다.
또 위안을 제공하는 존재인 그녀는 영양을 공급하고, 몸을 덥게 만들며, 안심시키고, 우리를 어린아이로 만든다. 그녀와 더불어 남자들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동일한 스타일의 제복을 입은 사람은 보모들이다.
2. 여성 모토바이커 모토바이커 진동하는 무시무시한 엔진 위에 엉덩이를 벌린 채 올라탄 여성 모토바이커는 늘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녀가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권력을 상징하는 가죽을 입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부, 가죽, 모피와 접촉할 때 생겨나는 성적 흥분을 지칭하는 ‘도라필리아(doraphilie)’는 권력에 대한 숭배와 맞물려 있다. 가죽으로 다리를 감싼 여성 모토바이커는 주변인, 체제 저항자, 반골 이미지를 강조한다. 가죽은 또 야만스러움을 연상시킨다.
야수 가죽으로 몸을 치장한 남녀는 그에 어울리는 자질도 동시에 부여받는다. 수천 년 전부터 자신의 용맹스러움과 힘을 과시하기 위해 사람들은 사냥을 통해 획득한 전리품들을 몸에 걸쳤는데, 가죽을 걸친다는 것은 자신의 성적 본능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을 의미했다.
자신이 처형대에 묶도록 명령한 죄수들을 범하기 위해 네로 황제가 야수로 변장했다고 로마 제정(帝政) 시기의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는 기술하고 있다. 가죽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검은색은 죽음과 권력을 상징한다. 동일한 제복을 입은 사람은 매드 맥스, 언더월드, 매트릭스 스타일의 미래세계 전사들이다.
3. 수녀 동정을 지킬 수밖에 없는 수녀는 금기와 위반을 상징한다. 전문적인 용어로 그것을 ‘히에로필리아(hiérophilie)’라 부른다. 그것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이끌림, 보다 구체적으로는 신성모독에 대한 이끌림을 뜻한다. 성과 종교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교회가 쾌락을 단죄하기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복수와 신성모독 행위가 넘쳐나는 것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계급이 지위에 목숨을 거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부르주아가 속물일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뒤흔들어놓고 싶은 욕구를 느끼지요.”
종교인들이 쾌락을 잘못과 연결시키기 때문일까? 쾌락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잘못을 더 많이 저질러야 할 것이다. 운명의 장난을 통해 수녀들이 사랑에 “빠져드는” 모습은 즐겁다. 동 주앙 입장에서 볼 때 성에 관심 없는 수녀를 탐욕스러운 성노리개로 변모시키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동일한 스타일의 제복을 입은 사람은 대자본가 그룹이다.
4. 여형사 여형사는 법률을 대표한다.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것은 권위를 끌어안는 방식이다. 금기로 고통 받는 남자들 입장에서는 신성한 복수이기도 하다. 그들이 여형사와 대적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녀는 권총을 차고 있기에 더욱 위험스런 존재이며, 남근이 달린 여성이자 남성화된 존재이다. 여형사는 사내들에 대항할 수도, 그들을 체포하거나 감시하고, 감옥에 처넣거나 심문할 수도 있다.
수갑을 보유한 이 불편한 지배자는 감옥 풍경을 늘 연상시킨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비라고필리아(viragophilie)’라 불리는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표현은 비라고(Virago), 곧 “남자의 용기를 지닌 여성들”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동일한 스타일의 제복을 입은 사람은 여자 레슬러이다.
5. 창녀 하이힐을 신고 호객행위를 하는 창녀가 사치스러운 의상을 입기에, 대부분의 남편들은 자신의 배우자가 “도에 지나치게” 옷을 입는 모습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권력을 남용하는 포주나 요구가 까다로운 고객처럼 굴면서 남자는 자기 배우자가 장난으로 돈을 받기를 원한다.
성행위 대가로 돈을 지불하고 그로부터 쾌락을 얻는 행위를 ‘크레마티토스필리아(chrematitosphilie)’라 부른다. 창녀가 “돈을 대가로 자신을 허용하기에” 이러한 방식은 남자에게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모든 수컷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포주가 양도하기에 창녀는 오브제로서의 여성을 연상시킨다. 이전과 이후의 모든 자와 연관되기에 창녀와 나누는 사랑은 난교파티와 관련을 맺고 있다. 동일한 스타일의 제복을 입은 사람은 비서이다.
6. 여중생 ‘님프필리아(nymphophilie, 소녀들에 대한 사랑)’와 ‘파르테노필리아(parthénophilie, 처녀에 대한 취향)’에서 유래된 여중생에 대한 기호는 록과 팝 음악의 영향 때문에 우리 사회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청소년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거짓이든 사실이든 간에 새로운 필요의 창조는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공연과 상품 사회가 발판을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패션, 샹송, 영화 속에서 롤리타가 차고 넘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라고 ‘롤리타들’이란 책을 쓴 파트리스 라마르(Patrice Lamare)는 설명한다.
“롤리타 여중생들”은 순진무구한 이미지를 통해, 그리고 입과 팬티 속에 손을 넣으며 남자들을 유혹하는 팜므 파탈인 생트 니투슈 이미지를 통해 포르노그래피를 위시한 모든 매체에 등장한다. 나보코프의 작품에 등장하는 롤리타처럼 이 소녀들은 희생자가 아니다.
순진무구함을 의미하는 여중생 제복을 입은 그녀들은 감정에서 자유롭다는 착각을 제공한다. 가짜 소녀들에 맞서 남자는 상황을 장악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허나 그러한 인상은 때때로 틀리는 경우가 있다. 동일한 스타일의 제복을 입은 사람은 폼폼 걸이다.
7. 스튜어디스 알랭 에릴에 따르면 스튜어디스 역시 간호사처럼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어머니를 상징한다. “사람들이 밀폐된 통로를 통해 들어가는 비행기라는 공간 속에서 스튜어디스는 사고를 막기 위해 일정한 제스처를 보여주면서 우리를 안심시킨다. 또 우리로 하여금 마시며 먹게 하고, 모든 것이 이상 없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그녀의 엉덩이는 공중에 있네’라는 샹송 가사가 이야기하듯. 제복을 입고서 상냥하게 미소를 짓는 그녀는 더없이 매혹적인 동시에 에로틱하다. 스튜어디스는 우리가 겁먹지 않도록 해주며, 자신의 목소리로 우리를 안심시키며, 자신의 몸을 우리 위로 기울이면서 우리를 포옹한다. 그녀는 구름 속에 아름다움을, 대기 속에 에로스를 발산한다.” 스튜어디스들이여, 감사합니다. 동일한 스타일의 제복을 입은 사람은 안내양들이다.
8. 여교사 법을 상징하는 여교사는 규칙을 정하고, 대중들 앞에서 독재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오직 그녀에게만 말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듣고 이해한다. 위대한 연설가들이 열렬한 감동을 끌어낼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교사는 자신의 청중을 굴복시킨다.
일부 지지자들은 독재자 페론의 연설을 들으며 기절하지 않았던가? 특히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고 흑판 앞에 서 있는 그녀 모습은 대단하게 묘사된다. 학업, 질문, 보상과 징벌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여교사는 이상적인 여성상이다. 동일한 스타일의 제복을 입은 사람은 여변호사이다.
(이미지 중 위의 것은 ‘Strict Nures Uniforme’사이트에서)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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