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창녀가 왕들의 묘지에 입성하다’(Une putain au Pantheon)

1977년 그리젤리디스 레알(Griselidis Real)은 “매춘은 혁명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날’ 전날이던 2009년 3월 8일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스위스 제네바의 ‘팡테옹’에 입성했다.

1929년 8월 11일 태어나 2005년 5월 31일 숨을 거둔 그리젤리디스 레알 입장에서 매춘은 ‘예술이자 휴머니즘이며 과학’이기도 했다. 제네바의 매춘부이자 작가 겸 시인이었던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자식들에 의해 우선 프티-사코넥스에 매장됐다가, 권위 있는 왕의 묘지로 이장됐다.

이 묘지는 위인들을 모신 프랑스의 팡테옹에 비교되는 곳이다. 그녀의 시신은 아르헨티나 작가 호세 루이스 보르헤스와 영화배우 프랑수아 시몽(인정받기에는 너무도 ‘문란했던’ 이유 때문에 이곳에 묻히지 못한 미셸 시몽의 아들) 사이에 안치됐다.

이장을 기념해 모두 20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시신의 이장은 제네바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열혈 사회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들은 분노의 시위를 벌일 것이라 예고했고 일부는 직접 묘지로 향하기도 했지만, “감동적인 애도 분위기에 감히 자신들의 의사를 드러낼 수 없었다.”

제네바의 기자들은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한 매춘부가 제네바의 팡테옹에 입성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많은 사람이 그리젤리디스 레알 시신의 이장을 기뻐했다”고 라 트리뷘 드 주네브 지는 적고 있다. 한 독자는 반어적으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오늘날 매춘은 지역의 지원에 힘입어 더 견고하고, 더 잘 조직된 외국 조직의 수중에 넘어간 반면 우리 할아버지 시절의 조용한 매춘부는 왕들의 묘지에 잠들었다. 놀랍도록 위선적이고 지독하게 정치적인 이러한 방식의 경의 표시를 그리젤리디스 레알이 증오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유럽에서 제네바는 런던 다음으로 매춘이 극성을 부리는 도시이다. 콜걸 에이전시 숫자가 은행만큼이나 많다.

그 모두가 번창일로에 있고, 국제적인 조직망을 구축하고 있다. 세계 어떤 곳에 가든, 당신은 제네바 에이젠시의 도움을 받아 13㎝나 되는 하이힐을 신은 성매매 여성을 만날 수 있다. 매춘부들의 대모가 아주 위선적인 이 도시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이 못된다.

그리젤리디스레알은 교사였던 부모 밑에서 엄격한 청교도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취리히 장식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20세에 결혼하지만, 6년 만에 파경을 겪은 후 독일로 떠난다. 그녀의 남자도 사라져 버린다. 그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무일푼에다가 서류도 없고 재산도 없이 그녀는 자기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1961년 매춘에 뛰어든다. 그녀는 독일의 한 비밀업소에서 일하다가 스위스로 추방된 후에도 일정 기간 이 ‘직업’을 이어나갔다.

그 후 그녀는 파리로 향해 그곳에서 ‘창녀들의 혁명’을 준비한다. 1975년 그녀는 500명의 동료들과 함께 생 베르나르 성당을 점거한 후 매춘부들의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둥서방에 의해 강요당할 때만 여성들이 매춘한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매춘 역시 하나의 선택이나 결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공식 서류에 ‘작가’뿐 아니라, 자신이 두 번째 직업으로 생각하는 ‘매춘부’란 표현도 함께 표기되길 고집했다.

‘검정은 색깔이다’ ‘고급 매춘부의 무도카드’ ‘내가 아직 살아있을까?’ 등의 저서들을 쓰면서 그리젤리디스는 활력이 넘치는 노골적인 언어를 통해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동정을 바라는 모습과도, 마음을 활짝 연 매춘부의 성녀 같은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묘사는 때로 검소했으나, 늘 독창적이었다. 매춘부들의 고통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상황을 종식시키고자 그녀는 꾸밈없이 자신의 인생을 묘사했고, 활동을 공개했다.

그녀는 대학들을 방문해 ‘매춘부’라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공회합의 사회를 맡았다. 그녀는 제네바의 파키 지구에 소재한 자신의 조그마한 아파트에 자료센터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늘 열정적인 유머를 잃지 않은 채 매춘부들도 인간들의 불행을 위무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록 그것이 ‘사회적’ 역할일지라도, 사람들은 매춘과 유사한 역할을 그 누구에게도 원치 않는 것은 자명하다. 자기 자식이 너트를 제조하고, 화장실을 점검하는 직업에 종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듯이. 우연히 어떤 직업을 맡게 돼 때때로 그 직업이 마음에 드는 경우도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마치 로봇처럼 동일한 제스처를 반복하는 일만 제외한다면 그 어떤 직업에도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불행하게도 매춘은 유대-이슬람-기독교 문명 속에서 사랑에 대한 신성한 생각을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종교적 도덕을 물려받은 자들 입장에서 볼 때 사랑은 무상의 것이어야 하고, 쾌락은 대가 없이 주어져야 한다. 이 논리를 보다 멀리 밀고 나가면, 오직 부부의 테두리 내에서만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감정이 없는 포옹은 추방된다. ‘재미로 하는’ 섹스는 금지된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과 강렬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 확실히 더 멋지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전쟁도, 매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이지 못한 우리들 세계이기에 매춘부들이 존재한다. 그녀들은 욕설을 듣거나, 함부로 취급당하거나,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오해받는 법이 없이 자신들의 직업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녀들은 일을 한다. 때때로 그녀들은 일을 잘 치러낸다. 모든 노동은 봉급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한 제빵업자가 바게트를 만들었을 때 그가 돈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모든 사람은 생각한다. 그러나 한 여자(혹은 한 남자)가 오럴섹스를 한 대가로 돈을 받을 경우 그것은 추문이 된다. 돈이 뒤섞일 때 성은 ‘더러운’ 것이 되는 것이다. 비슷한 시간과 주의, 재능, 그리고 때로는 어느 정도의 인간적인 열기를 요구했지만, 바게트는 여전히 순결하다. 차이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