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 이용 매뉴얼(Manuel de savoir-vivre dans les bordels)
일본의 유명한 화가 우타마로는 숨지기 2년 전인 1804년 성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객을 위한 일종의 매뉴얼인 ‘녹색집 연감(L`Almanach des maisons vertes)’의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에서 최근 번역 출간된 이 책은 고대 일본에서 고급 창녀가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618년부터 1872년까지 에도(오늘날의 도쿄)의 창녀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과 외호(外濠)가 설치된 게토에서 살았다. 그곳은 마치 만기를 채우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감옥과도 같았다. ‘요시와라’라고 불렸던 이곳은 관광객이 들끓는 명소였다. 오늘날의 암스테르담 홍등가와 같았다고나 할까.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아름답게 단장한 여자들이 나무 창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광경은 ‘진열’이라 불렸다. 요시와라의 방문객은 커다란 버드나무로 만든 모자를 쓰고 때때로 얼굴을 감춘 채 마음에 드는 짝을 찾거나 눈요기를 위해 여자를 꼼꼼하게 살피곤 했다.
그럴 때면 몰이꾼은 큰 소리로 “우리집 여자들이 가장 예쁘고, 가격도 제일 싸다”고 외치며 관광객을 유혹했다. 여자들은 새장에 갇힌 새들 처럼 비스듬히 시선을 던지며 무사태평하게 담배를 피웠고, 벗은 다리 끝으로 글자를 써대거나, 자기들끼리 속삭이면서 촌놈에 대해 무례하게 말하곤 했다.
여자 중 일부는 범죄를 저지르다 경찰이 집창촌에 넘긴 이들이었고, 부모가 돈을 받고 팔아넘긴 부류도 있었다. 기근을 만난 농부, 파산을 당한 상인, 심지어 사무라이까지 아이를 인신매매 상인에게 넘겼다. 그러면 상인은 10년에서 20년에 이르는 기간 일정 거처에 아이들을 ‘배치’했다.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대부분 빠져 나올 수 없었다. 요시와라 여자들은 종종 그곳을 빠져 나오기 전에 죽는 경우가 많았는데 평균 사망 나이는 27세였다. ‘고통의 세계에서 10여년’을 보낸 후였다.
그러나 요시와라 여성들은 특별한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성소 중의 성소, 가장 유명하고도 가장 권위있는 집창촌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녹색집 연감’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크리스토프 마르케는 가장 재능이 뛰어난 여성들이 요시와라에서 누렸던 특별한 행운을 강조한다. 미모와 지적 수준에 따라 일부 여성은 양가 규수가 받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들은 모든 종류의 예술교육을 받았고 스타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기에 당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들이 이들을 모델삼아 그림을 그렸다. 대중도 그녀들에 열광했다.
마르케는 “18세기 에도에 약 50여곳 이상의 집창촌이 존재했지만, 요시와라는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거나, 적어도 법이 보장하는 유일한 장소였다”고 말한다. 예술가, 문인, 고위직 무사, 돈 많은 상인이 자주 드나들던 요시와라는 역설적이게도 해방의 공간이자 남자를 위한 천국이었다.
세련된 문화가 태동하던 또 다른 장소였던 것이다. 돈을 쏟아부으려 이곳을 찾는 사람은 비극에 대한 일정한 감각을 보유한 채, 진정으로 완성된 인간은 모든 것을 잃을 줄도 안다는 생각을 기꺼이 수용했다. 그 중 일부는 마지막 동전 한닢까지 이곳에서 탕진하기도 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몇몇 ‘오이랑(고급창부)’과 잠자리를 같이 하려면 월급의 몇 년 치에 해당하는 막대한 돈이 들었기 때문이다. 통이 크지 않으면 그녀들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관광객에게 노출된 주요 도로변의 여성이나 골목 안 길에서 매춘을 하는 여성과는 달리 가장 비싸고 유명하며 존경받던 눈에 보이지 않는 여성이 있었다.
세 번의 방문이라는 의식에 따라 문자 그대로 ‘혼사를 치러야 하는’ 부류의 여성이었다. 이 여성들은 세 번째, 혹은 그 이상의 방문 시에만 자신의 몸을 허락했다. 마르케는 “세 번째 방문이라는 의전은 요시와라에 존재하던 특별한 의식이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 방문 시 방문객은 창녀를 간신히 볼 수 있다. 그녀는 방문객에게 정중하게 단 한 마디만을 ‘적선’한다. 마찬가지로 돈이 많이 드는 두 번째 방문 시 그녀는 방문객에게 함께 식사하고 음주하는 것까지는 허락한다. 세 번째 방문 시 그리고 고객이 여전히 돈을 풍성하게 쓰고 참을성이 있으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줄 경우 그녀와 잔을 교환하면서 ‘혼사’를 치렀다.”
세 번의 방문이라는 제도는 요시와라의 극소수 여성, 즉 계급의 최정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엘리트와 관계를 맺던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제도였다. ‘오야쿠-사마(고객)’를 몸이 달게 만들면서, 그녀들은 그들이 ‘행복한 소수’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이해시켰다. 그녀들은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르케는 “세 번의 방문은 결혼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혼례를 치르기 전 세 번 방문하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를 가늠해보고,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갖는다. ‘녹색집 연감’ 속에서는 첫 방문의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묘사돼 있다. 고객과 창녀는 서로 멀리서 바라보고 상대방을 고르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를 고를 권리를 더 가진 것처럼 보인다. 여성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요시와라에서 행해지던 또 다른 의식도 ‘녹색집 연감’에 들어있다. 고객에게 소송을 거는 것이다. 직급이 높은 창녀를 한 남성이 ‘선택’했지만 또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으며 그 창녀를 속였을 때, 그녀는 마치 사이코 드라마 처럼 진행되는 부부싸움을 고객에게 걸 권리를 갖는다. 법정 처럼 꾸며진 한 방으로 강제로 끌려간 후 ‘간통한’ 고객은 막대한 벌금을 물지 않을 경우 최악의 모욕을 치르도록 위협을 받는다.
배신한 자는 죄목을 나열하고 자신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매음굴 촌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고객이 기대치 만큼의 액수를 지불하지 못할 경우 그녀는 가위를 들어 그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고 위협한다. “불륜을 저지른 고객에게 가짜로 쪽진 머리나 가발을 전문적으로 선사하는 이발사가요시와라에 존재했다. 오이랑의 복수는 무시무시하고 모욕적이기도 했다.”
글=아녜스 지아르(佛 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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