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바람 부는 길(2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혹시 건강검진을 받을 때에 수면내시경을 신청해 본 경험이 있으신지. 누구라도 주사 한 방에 까무룩 하고 잠이 들게 마련인데 깨어보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차 가물거리곤 했을 것이다. 그때 팔뚝에 맞은 주사 약액이 프로포플일 것이다. 단 한 방이면 망각의 강을 건너게 되는 신비로운 액체.
“누구요? 당신들은… 후 아유?”
프로포플 주사에서 깨어날 때에는 아무런 후유증도 없다는 것이 매력이다. 두통이 온다거나 메스꺼운 증상을 느끼는 법도 없다. 단지 아침잠에서 이제 막 깨어난 듯 신비롭거나 혹은 벅찬 미량의 감정이 느껴질 뿐이었다.
“한국말로 해도 됩니다. 편하게 말하세요.”
“누구냐니까…”
잠에서 깨어난 권도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베들레헴 종합병원의 응급실 베드에 모로 누워있었는데 지금 눈을 떠보니 전혀 낯선 공간이었다. 언뜻 보아서는 유흥주점의 내부 밀실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밝은 조명이 켜진 것으로 보아서는 고급 사무실 같기도 했다.
“혹시 이 분을 아십니까?”
본인은 침대에 누워있고, 그 주위에 여러 사람이 웅성거리고 서있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 권도일은 아직 제대로 상황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정신은 명료하지만 몸은 탈진한 상태와도 같았는데 누군가가 그의 얼굴 앞으로 사진 한 장을 들이 밀었다.
“글쎄요… 내가 알 만한 사람입니까?”
“우리가 궁금한 게 바로 그거요.”
“가까이 좀 봅시다.”
권도일은 천천히 눈을 비비고 나서 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낯익은 얼굴… 거성그룹에서 가장 뛰어난 블루드라이브 기술자이면서 수석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제임스 리 박사가 분명했다.
권도일은 긴장했다. 제임스 리 박사는 얼마 전, 서 요르단 이스라엘 점령지역 에이발 산자락에서 비밀리에 성능테스트를 하다가 사고를 당한 에어뮬에 함께 탑승했던 자였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누구이기에 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던 제임스 리 박사의 사진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나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권도일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하는 짓으로 보나 태도로 보나 그들은 풋내기들이 아니었다. 사진을 받아들었을 때 불현듯 놀라는 모습이라든지, 혹은 잠시 격해졌던 호흡, 눈망울의 작은 떨림… 등등 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사진 속의 남자와 권도일의 관계를 확신하고 있었다.
“됐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확인시켜준 셈입니다. 자! 권도일 전무님. 우리와 함께 제임스 리 박사님을 만나러 가실까요?”
“나는 이스라엘 어번 사의 직원들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내 판단에 당신들은 어번 사의 직원이 아니군요. 공연히 문제 일으키지 마시고 나를 다시 베들레헴 종합병원 응급실로 보내주십시오.”
“잘 맞추셨습니다. 우리는 제임스 리 박사가 보낸 사람들입니다. 박사께서 당신을 긴히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박사는 어디에 계십니까? 살아 있나요?”
제임스 리 박사가 살아있다니… 권도일의 가슴이 또 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어찌된 일일까, 그의 주위로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느낌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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