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1회> 바람 부는 길 49
군대에 가면 화장실 문이 반 토막이다. 위아래가 뻥 뚫려 있다는 말이다. 대기업 건물의 화장실 문도 군대보다는 조금 낫지만 위부터 아래까지 온전히 가로막혀 있지는 않다. 그런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왠지 찝찝해지기도 한다. 조금밖에 남지 않은 화장지가 길게 늘어져 있을 때엔 혹시 옆 칸 사람이 밑으로 손을 슬쩍 집어넣어 훔쳐가지나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그저 옆칸에 화장지 여분이 많이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마치 군대 화장실처럼 황태덕장도 위아래가 휑하니 드러난 상태였다. 아니 가운데에도 일부분이 뚫렸으니 그보다 훨씬 더 찝찝한 상태였다. 그래도 전진후는 김지선의 바지를 벗겨내었다. 백주대낮, 자동차가 쌩쌩 내달리는 고속도로 변이었지만 그나마 줄줄이 코 꿰어 커튼처럼 드리워진 명태들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명태장막을 잘 이용해야 해. 그런데 스트라이크 존이 너무 좁아. 명태 길이가 2미터쯤 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비 맞은 중처럼… 중얼중얼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그는 어김없이 그녀의 옷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있었다. 벗긴 옷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걱정이었다. 왜냐고? 황태덕장 아래로 남녀의 다리가 보이고, 그 옆에 옷가지가 떨어져 있다면 남들이 뭐라고 할까?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상열지사에 눈이 멀었어도 그런 뒤처리까지 생각할 줄 알기 때문에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옷 이리 주세요!”
“왜?”
“덕장 위에 걸어놓게요.”
“그래, 그게 좋겠어.”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라는 시가 있다. 길이 외줄기로 통해 있으니 오로지 그 길로 가야만 할 것이다. 지금 전진후와 김지선의 심정도 그와 같았다. 상열지사는 벌여야겠고, 덕장 어딘가로 몸을 숨겨야겠는데… 2층으로 되어 있는 덕장 구조가 문제였다.
어깨에서부터 배꼽에 이르는 부분, 그리고 엉덩이 하단부에서부터 종아리까지는 명태로 잘 가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제일 중요한 부위, 이를테면 지겟작대기 부위가 하필 휑하니 뚫려 있었으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좋은 방법이 있어, 이걸… 이렇게 들고 서있어요.”
“이걸… 이렇게 말이에요?”
“양쪽 엉덩이 높이에 맞춰서 잘 가려보란 말이에요.”
“아! 이렇게요?”
궁 즉 통,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명태장막의 길이가 어설퍼도 아랫도리를 가릴 방법은 있었다. 전진후는 덕장에 줄줄이 걸린 명태 중에서 그 중 길이가 긴 놈들로 한 꼬챙이씩, 도합 두 꼬챙이를 끄집어내어 김지선의 손에 들려주었다. 한 꼬챙이에 대략 명태 열 마리씩이 매달려 있었으므로 그걸 허리높이에 맞춰 들고 있자니 힘에 부쳐 양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참아야 하느니….
“됐어, 훌륭해요. 사방이 명태로 가려지니 얼마나 아늑해? 춥지는 않지?”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46번 국도와 영동고속도로가 이어지는 부근, 쌍용이 서로 마주본다는 용바위 앞의 어느 황태덕장에서는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추워서인지, 혹은 무거워서인지, 아름다운 8등신 아가씨가 부들부들 떨면서 양손에 명태 열 마리씩 달린 꼬챙이를 부채처럼 펴들고 있는가 하면….
“추워도 조금만 참아, 곧 화끈화끈 열이 날 거야.”
이렇게 8등신 미녀를 어르고 달래면서 그녀의 옷을 벗기는 남자가 있었다는 말이다. 아직 황태덕장에는 잔설이 분분히 쌓여 있었다. 더구나 찬바람마저 불고 있었는데 뭐가 어째? 춥지는 않아? 얼어 죽을망정 진하게 달려보자는 의도가 분명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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