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자기 엉덩이를 보여줄까(下) (Pourquoi les femmes montrent leurs fesses.)

미국에서는 ‘뷔를레스크’ 전통이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어빙 클로라는 한 서점 주인이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핀업걸 사진들을 찍어 내건 것이 효시였다.

그들은 킥킥대며 서로 싸우는 척하고, 굽이 20㎝나 되는 하이힐을 신고 발을 굴러댔다. 모든 장면에서는 폭소가 차고 넘쳤다. 미국 본디지의 시작이 맘보 음악 및 ‘정글’ 스타일의 유행과 맥을 같이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행복을 전파하는 희극이기도 했다.

이 시대의 아이콘 베티 페이지는 짧은 표범 가죽 치마를 입고 포즈를 취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수가 되기를 꿈꾸던 그녀는 하이퍼 키치적인 ‘치즈케이크(벗은 다리)’ 사진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사진에는 포탄 모양의 브래지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영악한 표정, 위험한 장난기가 충만했는데, 이를 통해 그녀는 순진무구한 에로티시즘의 아이콘이 됐다. 뷔를레스크 필름들은 암암리에 팔려나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법은 벗은 육체의 폭발적 매혹을 금지하고 있었다. 모델들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1957년 어빙 클로는 ‘중범죄 공모’란 죄목으로 기소됐다. 그가 음란한 물건을 우체국을 통해 발송했다는 이유에서다. 감옥행을 피하기 위해 어빙 클로는 거의 모든 사진을 폐기 처분했고, 그런 다음 병에 걸려 숨을 거뒀다.

1958년 할리우드와 자신의 못 이룬 꿈을 저버리면서 내슈빌의 핀업걸이었던 베티 메이 페이지는 완전히 종적을 감추며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그녀의 유쾌한 모습, 그녀가 보여줬던 성적 환상은 본보기가 된다.

베티 페이지는 아직도 살아있다. 물론 그녀를 흉내 내는 무수한 여성을 통해서. 그녀가 하이힐 굽으로 아주 즐겁게 관습들을 짓밟았기에 많은 세월이 흘러 젊은 여성들은 그녀의 늘어뜨린 머리카락과 핏빛 립스틱을 자신들의 여성성을 드러내는 심벌로 삼았다.

그녀를 망각으로부터 끄집어내 글래머와 쾌활한 이미지를 차용했다. “여성들은 페미니스트가 되기 이전에 먼저 여성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라고 뷔를레스크 쇼의 안무를 담당한 니나 보작(Nina Bozak)이 강조한다.

“핀업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유혹 능력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우아함을 유머와 연결시키며, 금기를 조롱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시각은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유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육체에 자부심을 느낄 필요가 있다.

뷔를레스크의 무희들은 머리가 빈 여자들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하마의 젖가슴과 엉덩이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모든 남성을 자신의 발아래 둘 줄 아는 기술이 있었다. 그녀들에게는 자신감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부터 ‘퍼시 파워(Pussy Power)’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뷔를레스크 스트립티즈들은 그들의 육감적인 엉덩이 굴곡보다 더 폭발적인 느낌의 이름을 가진 예술가들을 통해 의기양양하게 되돌아왔다.

파리의 ‘포럼 드 라 벨빌루아즈’에서 사람들은 닷새 동안 키튼 온 더 키즈, 잉가 라 두스, 미스 마리옹, 랄라 모르트, 에바 라 방프, 스리즈 디바 샹포미, 카바레 데 피유를 만나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닷새간의 밤이 치명적인 이미지들로 충만했던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옅은 핑크빛 반소매 잠옷을 걸치고 남자를 유혹하는 여성이 된다는 것이 자신을 해방시키는 최선의 방식을 뜻한다.

1940-50년대의 불량한 모습을 대변하면서 뷔를레스크 아티스트들은 대형 도자기에 지나지 않는 여성 이미지를 유쾌하게 파괴시켜 버린다. ‘바비 인형들에게 죽음을!’ “하나의 연극 장르이기 이전에 뉴뷔를레스크는 무엇보다도 입장의 표명을 뜻합니다”라고 ‘뉴뷔를레스크’의 저자 세실 카마르는 확신한다.

그녀는 새로운 형태의 이 페미니스트 운동을 다음 구절로 요약하고 있다. “여성들을 최대한 노출시켜라!”

‘라 벨빌루아즈’의 주소는 파리 제20구 부아예(Boyer) 거리 19-21이다. 지하철은 메닐몽탕(Menilmontant)이나 강베타(Gambetta) 역에서 내리면 된다.

(이미지는 ‘더 노토리어스 베티 페이지(The Notorious Bettie Page)’란 제목의 영화 스틸(위)과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스트립티즈 극단 중 하나인 ‘벨벳 해머(Velvet Hammer)’를 창설한 미셸 카(Michelle Carr)(아래).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