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자영 기자]손재영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타워팰리스의 이후 아파트 이름 자체가 명성(prestige)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른바 ‘브랜드 아파트’의 등장을 알리는 서곡이었고, 10년간 이어진 ‘브랜드 전쟁’의 단초였다.

이제 “○○동 래미안 산다”는 말이 익숙한 시대지만 90년대 후반만 해도 아파트 이름은 특별한 의미나 역할이 없었다. 아파트 외관이나 내부 구조도 건설사마다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시공사가 어디냐’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우성, 경남, 한양, 풍림 같은 중견 주택전문기업이 대기업보다 더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강남구 도곡동에 66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가 들어서며 구 질서는 무너졌다. 대한민국 0.1%의 상징으로 강렬하게 각인된 타워팰리스는 고급아파트의 롤모델로 자리잡으며 우리나라 주거문화 구석구석에 변화를 몰고왔다.

우선 타워팰리스 이후 아크로비스타ㆍ하이페리온 등 고급 주상복합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고, 일반 아파트의 브랜드화도 본격 진행됐다.

한양대 김경숙 박사의 ‘아파트 브랜드와 소비자 주거만족도’ 논문에 따르면 브랜드화 초기(1998~2002년)에는 캐슬(castle), 팰리스(palace) 등의 이름이 대세를 이뤘다. 타워팰리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일례다.

우미건설의 이춘석 홍보팀장은 “브랜드 아파트 시대가 열리며 평면, 커뮤니티 시설, 조경 등 다방면에서 차별화를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며 “아파트 패러다임이 양에서 질로 넘어가는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건설사는 브랜드 차별화를 위해 타워팰리스의 원스톱리빙(one-stop living)을 일반 아파트에도 끌어들였다. 타워팰리스 등 고급주상복합에서나 볼 수 있던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사우나, 골프연습장을 아파트단지 내 별도의 건물로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분양하는 신규 단지에서 커뮤니티 시설은 필수요소가 됐다.

이 같은 커뮤니티 시설의 보편화는 ‘이웃 간의 소외’로 대변되던 아파트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은난순 한국주거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건설사의 차별화 전략과 주민의 이웃관계 회복 욕구가 맞아떨어졌다”며 “커뮤니티 공간의 확충으로 봉사활동 등 주민 모임이 상당히 활성화했다”고 평가했다.

타워팰리스처럼 건물을 탑상형으로 높게 세우고, 넉넉하게 확보된 동간 공간에는 각종 꽃과 나무, 연못 등 조경을 꾸미는 건축양식도 일반화했다. 많은 아파트단지가 타워팰리스 같은 무인경비시스템을 들여오면서 국내 보안시장은 작년 5조원대의 규모를 기록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주택문화의 트렌드 리더로서 타워팰리스에 대한 주민의 자부심은 상당하다.

타워팰리스 주민 최모(42) 씨는 “1999년 분양 당시 IMF 외환위기로 시장은 엉망이었고, 주상복합이라는 주거형태도 낯설었다”며 “나에게도 분양은 도전이었지만, 결국 다른 아파트가 타워팰리스를 뒤쫓는 모양을 보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타워팰리스에 10년째 거주 중인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임원은 “이제 너무 흔한 것이라 특별히 자랑할 게 없는데…”하고 머리를 갸웃거렸다.

더이상 타워팰리스만의 고유한 특징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역설적으로 타워팰리스가 대한민국 주거문화에 끼친 커다란 영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타워팰리스만의 특이점은 다른 아파트의 부단한 베끼기를 통해 한국의 공동주택 문화에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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