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붉은 길, 푸르른 마음 (1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신문기사 잘 읽었어요. 싱글메이드 사의 광고 모델로 나서게 되었다니 축하해요. 역시 미인을 보는 눈은 전 세계가 공통적인가 봐요.”
오랜만에 강유리를 만난 자리에서 신희영은 어색한 칭찬을 남발하고 있었다. 항간에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다는 말이 있던가? 심정적으로는 강유리가 당장에라도 훨훨 날아 싱글메이드 사로 떠나갈 것이 분명했지만 아직 겉으로 드러난 징후는 없었다.
“고마워요 회장님, 저도 깜짝 놀랐어요. 어느 날 생각지도 않던 연락이 오더라고요. 광고모델을 서주면 100만 불을 준다나요?”
“그러게 말이야, 100만 불! 꿈의 계약금이지요.”
“기막힌 건 말예요, 광고에 함께 출연하는 타이거 우즈에게는 겨우 50만 불밖엔 지급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때요? 놀랍지요?”
“놀라운 게 아니라 유리 양이 자랑스럽지요.”
“더욱 놀라운 거는요… 싱글메이드 사에서 아예 선수협찬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친 사실예요.”
강유리는 이미 흥분에 들떠 있었다. 싱글메이드 사에서 선수협찬을 한다는 뜻은, 세계적인 골프용품 제조회사인 싱글메이드에서 강유리를 당당히 골프선수로 인정하고 투자를 하겠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었다.
신희영은 바로 그 점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동안 세계일주 전지훈련을 한답시고 그녀에게 투자한 돈만 따져보아도 수억 원이 넘겠지만, 미리 투자하고 기대했던 미래 가치를 송두리째 날려 보낼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협찬한다고 하면… 받을 거예요?”
“물론이지요, 회장님. 그런 엄청난 기회를 놓칠 수 있나요? 소문에 의하면 연간 100만 불을 지급하는 외에 골프용품, 승용차… 게다가 대회 출전 때마다 타야하는 비행기 삯, 호텔 비, 심지어 건강진단 비용까지 대준다고 하니 대박이지요.”
“그렇군요. 꿈만 같은 일이 확실하군요. 그런데… 유리 양이 싱글메이드로 홀랑 날아가면 나는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해봤어요? 나는 뭐야? 닭 쫓던 개 지붕 위에 떠있는 보름달이나 쳐다보라는 건가?”
신희영은 미리 준비해 간 코냑 한 잔을 따라주며 그녀에게 물었다. 표정은 온화했고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담겨있었다.
“어머, 닭 쫓던 개라니요? 어찌 그리 놀라운 비유를 하세요? 여태껏 저를 돌보아주신 분을 제가 잊을 리 있겠어요?”
“하지만 내가 묻는 건 잊고, 안 잊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투자가치를 존속시키느냐 빼앗기느냐 하는 문제라고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당최 어려워서…”
“나는 여태껏 강유리 양을 돌보아준 것이 아니라 강유리라는 골프선수에게 투자한 것이라는 말이지요. 협찬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나 계약서도 쓴 적이 없는데…”
“관행이란 게 있어요. 계약서보다도 더 무서운 족쇄지요. 내가 유리 양을 보내주지 않으면 유리 양은 싱글메이드로 갈 수 없다는 말이에요.”
갑자기 신희영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진검승부를 벌일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희영의 입장에서 본다면 강유리는 장차 큰돈을 거머쥐게 만들어주는 도구와 다름없었다. 그런 훌륭한 도구를 차버릴 수야 있나.
신희영은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단호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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