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 붉은 길, 푸르른 마음 (2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어머나,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우리가 남아공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기로 한 건 운명이에요. 운명의 여신이 우릴 예쁘게 봐주고 있다고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게리 플레이어 CC에 예약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신희영은 또다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생각해 봐요, 우리를 지도해줄 사람이 ‘유리 코턴’이라고요. 서양 사람이니까 ‘코턴’이 성씨고 ‘유리’가 이름일 거 아니에요? 우리 팀에도 ‘유리’가 있잖아요? 강유리 선수! 서양과 동양이 어우러진 팀에 서로 같은 이름의 선수, 코치가 있다는 건…”
“대박이 날 징조지요.”
후렴을 읊고 나서는 사람은 강준호였다. 참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신이 났다는 반증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한번쯤은 남아공의 사막에서 골프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3류 골프선수 처지에, 아무런 스폰서도 없이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갈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그렇지요? 대박이 나겠지요?”
“그럼요. 호성 군이 PGA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리란 징조입니다.”
강준호는 정확히 신희영의 혈맥을 짚어내고 있었다. 이런 순간에 제 딸인 강유리 선수의 이름을 들먹인다든지, LPGA를 들먹이다가는 잘 쑤어놓은 죽에 코 빠뜨린 놈 신세가 될 것이 뻔했다.
“아! 생각만 해도 멋져요. 우리 호성이가 그린재킷을 입는 그 모습이란…”
멋지겠지. 공부는 못하고 머리는 나빠도 생긴 건 멀쩡하니 그린재킷을 입혀놓으면 대충 멋지긴 할 거야! 강준호는 신희영의 말에 건성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유호성이야 아무러면 어때… 이미 그의 마음은 남아공의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한 전설의 도시 로스트 시티(Lost City)로 달려가고 있었다.
‘로스트 시티… 그 한 복판에 피라미드 형태로 웅장하게 들어선 케스케이드 호텔에 투숙을 할 거야.’
눈을 감고 중얼중얼… 강준호는 이미 피라미드식 리조트 호텔인 케스케이드의 발코니에 기대서서 눈앞에 넓게 펼쳐진 게리 플레이어 골프장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론 마음속으로 말이다.
“어머나, 게리 플레이어 골프장에서 최경주 선수가 경기한 적이 있네요. 2008년! 그때에 7등을 했다는 군요.”
“맞아요. 타이거 우즈도 다녀가지 않았나? 하여간 게리 플레이어는 코스 레이아웃이 매우 어렵고 길어요. 그래서 선수들이 스코어에 욕심을 부릴수록 점점 스코어가 나빠질 우려가 있지요.”
“러프가 깊어요?”
“러프만 깊으면 말을 안 해요. 숲도 깊고, 나무둥치도 크고… 돌멩이 밭은 또 어찌 그리도 많은지! 2007년인가? 여기에서 여자 월드컵대회가 열린 적이 있어요. 미국 LPGA, 유럽 여자 골프투어에서 공동개최 했는데 신지애 선수도 참가했지요.”
강준호는 신이 난 김에 마냥 떠들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신희영도 조금씩 마음이 들뜨는 중이었다.
“강 프로님! 아무래도 변호사를 새로 바꿔야 할까 봐요. 지금 의뢰한 변호사는 너무 동작이 굼떠요. 이혼수속 하는 데 뭐가 그리 오래 걸린담?”
문득 남아공 골프 전지훈련비용이 걱정되었던가? 신희영은 느닷없이 남편 유민 회장으로 받아낼 위자료를 헤아리고 있었다. 가관이었다. 하지만 정작 가관인 것은 유호성이야말로 남아공 행을 목 빠지게 기다리더라는 사실이었다. 골프연습이 끝나는 매일 밤… 환락시설 그득한 선 시티에서 나날이 강유리의 육체를 탐닉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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