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 붉은 길, 푸르른 마음 (28)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엇비슷한 비유이긴 하지만 유민 그룹의 법적인 회장은 아니어도 신희영의 말 한 마디는 준치 대접을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신희영은 비록 지나가는 말로 비행기 좌석에 대해 언급했지만 조 차장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항공표를 수정하여 예약했다는 뜻이다.
“비즈니스 석… 세 분, 나머지 여섯 명은 일반석으로 끊었습니다.”
조 차장은 항공티켓을 부채처럼 펼쳐들며 신희영에게 보고했다. 그는 ‘세 분’과 ‘여섯 명’을 분명히 구분지어 보고했다. 세상에, 존칭이 이렇게 뒤섞이다니… 누군 태어날 때부터 은 숟가락을 물고 나왔나? 세 분? 여섯 명?
“아니, 조 차장은 그렇게 융통성이 없나? 회장님께서 비록 당신 자리를 비즈니스 석으로 끊으라고 했지만, 의당히 1등석으로 끊었어야지요.”
강준호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신희영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잘했어요, 조 차장. 1등석은 값이 네 곱절이라니까 그러시네…”
“네 배 아니라 열 배라도…”
“그만! 됐습니다.”
강준호는 중얼중얼… 냉가슴 앓는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토사구팽이라더니, 유호성이란 토끼를 수중에 넣고 난 이후로 그는 비루먹은 개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솥에 넣어져 삶아지지 않은 것만 해도 큰 다행이었다.
신희영이 이끄는 골프 전지훈련 팀의 남아공 원정은 즉시 이루어졌다. 신희영은 팀원 전체가 남아공으로 옮겨가는 엄청난 일을 마치 손가락으로 지구본을 돌리듯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본인이야 뭐 어려울 일이 있을까? 명령하고, 비행기 우등 석에 타고, 특별 기내식으로 식사하고, 영화 두어 편 보고나면 거짓말처럼 남아공에 도착해 있을 텐데. 걱정스러운 일이 있다면 혹시 비행기에서 틀어주는 영화가 이미 본 것들이면 어떻게 할까? 하는 정도일 뿐이었다.
수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비행기에 오른 사람들은 강준호, 그의 딸 강유리… 굳이 한 명을 더한다면 강유리의 매니저로 자칭하고 있는 백광돌, 이렇게 세 명이었다. 그들은 비행기 중앙 좌석에 일렬로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마치 남남인 것처럼 서로 간에 아무런 말도하지 않았다.
“형님이 어떻게 처신했기에 이런 꼴이 되었습니까?”
매니저 백광돌이 먼저 볼 멘 소리를 했다.
“내 처신이 어땠기에? 난 할망구에게 미움 받을 만한 짓은 조금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우째 이런 싸구려 대접을 받는대요?”
“어허! 그게 바로 자네 때문일세. 타이거 우즈의 후계자입네 어쩌네 하고 난리 부르스를 쳐서 할망구를 토라지게 한 탓이지. 까놓고 말해서 타이건지 뭔지, 그 작자가 내 딸 유리한테 제대로 해 준 게 뭐가 있어?”
“쉿! 낮말은 고도리가 듣고, 밤 말은 쥐새끼가 듣습니다. 아직 유리가 형님 딸이라는 사실은 철통같은 비밀로 되어있다, 이겁니다.”
대뜸 큰 목소리를 내는 강준호의 입을 백광돌이 재빨리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는 노트와 펜을 꺼내어 무언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양쪽 옆자리에 앉아있는 강준호와 강유리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글씨였다.
<여기서도 한 탕 뜁시다. 배에서도 뛰었는데 여긴들 안 되겠수?>
백광돌은 강준호의 눈치를 보며 노트자락을 그의 코끝으로 들이 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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