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정구’ 출간…화제의 중심에 선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재벌들의 미래상을 제시한 글 대물림 무조건 나쁜 것은 아냐 투명치 않은 승계과정 지적한것
기부에도 진정성이 있어야 적선하듯 봉사하고… 적선하듯 기부는 안돼 1%가 열어야 99%도 열려
최근 ‘이정구-벌족의 미래 1’이라는 소설이 화제다. 적당한 편법과 부정으로 대한민국 대표 재벌에 올라 이젠 후계 상속을 준비하던 삼현그룹 이정구 회장(삼성 현대차 LG그룹 오너 성을 딴 주인공)이 고심 끝에 경영 세습을 포기하고 모든 재산을 사회환원한다는 내용이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을 빼다박은 주인공 캐릭터도 논란거리지만 편법 상속과 증여 등 재벌에 대한 까칠한 비판이 대부분이라 재계 쪽 반발이 꽤 있다. 작가가 행정고시 7회로 국무조정실장, 증권거래소 이사장, KTB네트워크 회장 등을 지낸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이라는 것도 화제였다. 그는 왜 이런 반(反)재벌, 반기업 소설을 썼을까? 어떤 악연이 있기에…. 출자총액제한, 순환출자규제 등 갖가지 재벌규제론이 일고 있는 터라 더 궁금했다. 그러나 정작 삼성동 세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 소설이 ‘재벌 비판서’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재벌의 미래상을 제시한 글’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 1%인 재벌 오너들이 먼저 ‘내려앉는 게’ 사회 갈등 해소와 재벌의 부정적 이미지를 깰 해결책임을 강조하려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기업의 존재가치와 순기능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소 격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당초 기대(?)를 살짝 접어야 했다.
- ‘소설 이정구’가 적지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삼성 얘기를 직접 다룬 게 아니냐며 재계에서 비판하는 시각들이 많다. ▶ 큰 줄거리로 봐 달라. 특정인이나 특정 그룹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큰 기업의 오너들이 개인적인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 이런 게 있을 수 있다고 제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벌은 많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많은 존경을 받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 삼성을 비롯한 대그룹 오너들에게 재산 전액 사회기부, 그룹 해체, 2세 상속 포기 등을 권고하는 것 같다. 실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 이정구 회장처럼 전 재산을 출연하고 세습경영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너가 판단할 일이다. 강제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다만, 그런 생각을 가진 오너가 몇명이라도 나와준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바람은 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카네기나 록펠러가 그렇게 하지 않았나. 벌 때는 다소간의 반칙이나 편법이 있었더라도, 나중에는 정승처럼 쓰는 그런 재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너 본인도 행복하고 사회적으로도 신뢰받는 ‘거목’이 될 수 있지 않겠나. 따뜻한 자본주의를 얘기한 것이다.
- 그렇지만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다’ 등 소설 속에는 반기업, 반부자 정서가 매우 짙다. 소설 형식을 빌어 결국 재벌과 부자들을 비판한 게 아닌가. 너무 부자를 단순화해 부자의 가치에 혼동을 주고 있다. ▶ 아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1%와 99%의 갈등이 큰 문제다. 갈등이 이제 전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산층은 씨가 말라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 모두들 문제만 제기할 뿐, 대안을 못찾아 오히려 양극화만 심화시키고 있다. 양보하고 나누고 껴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1%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를 제시했다. 사재출연은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 우리 재벌의 문제점을 무엇으로 보나. 또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 그들이 만든 제품에는 대부분 국민이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 회사를 보면 좀 다르다. 생산과 수출, 투자, 고용 등에서 큰 역할을 하지만, 제품 보다는 이미지가 못하다. 오너에 대해선 더 네거티브하다. 특히 경영 상속, 대물림하는 과정을 보면서 더 그렇게 된다. 오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높여야 기업 이미지도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 경영권을 대물림하는 게 꼭 나쁜 일인가? 해외에서도 가업승계 기업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 2세, 3세라고 무조건 안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승계 과정에서 투명성이 부족하고 편법 의혹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철저한 검증을 거쳐 경영능력이 인정된 후 후계자로 나서는 것은 어찌하겠는가. 다만 ’은저수 물고 나왔다고’ 나이 40에 후계자로 나선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법적으로 정당하고, 의혹없는 방식이 좋다. 지금까진 그렇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 전문경영인 체제는 멀리 보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오너 체제의 장점까지 무시할 순 없는 일 아닌가. ▶과거 개발기에는 분명 과단성있는 결단과 도전정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점점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런 장점들이 희석된다고 본다. 검증 안된 오너들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겠는가. 오너라고 무조건 경영권을 행사해야 하는가. 경제개발기 CEO의 자세나 방식과 세계 선두기업을 경영할 때의 그것은 달라야 한다. 과거에 결단력과 추진력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미래를 보는 안목이 중요하다.
- 독자들, 특히 기업 측 사람들은 이 소설을 ‘소설 형식을 빌린 재벌 비판서’로 인식한다. 목숨 걸고 나라와 기업을 키워 왔고 이젠 적극적인 나눔을 펼치고 있는 대다수 기업인의 공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
▶ (재벌과 반재벌)의 대립각으로 보지 말아 달라. 우리사회 1%의 책임을 얘기한 것이다. 형편이 나은 1%가 먼저 양보하고 겸손하고 나누고 봉사하는 게 옳다. 솔직히 기업의 ‘Me First’ 때문에 글로벌 위기가 오지 않았나. ‘We First’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과거에 기업의 목적은 당연히 이윤추구라고 용인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기주의로 흘렀다. “내가 잘해서 잘 됐다”는 생각은 문제다. 기업이 이 만큼 된 데는 직원, 주주 보다 국민의 도움이 더 컸다. 최근 부자 기부가 늘고 있는데, 기부에도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적선하듯이 봉사하고 기부하는 것은 안된다.
- 부자와 재벌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보나. ▶ 1%와 99%가 서로 “당신부터 변해라”하고 싸우면 답이 안나온다. 1%부터 먼저 변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1%가 망하겠다고 생각했다. 있는 사람들이 자세를 낮춰야 한다. 그래야 99%도 “나도 바뀌어야 하는구나”하며 수긍하고 따라온다.
- 올해 총선에 이어 대선을 앞두고 안그래도 반기업, 반재벌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기업의 순기능과 역할을 평가절하하고 너무 왼쪽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 거듭 얘기했지만 제품 보다는 기업, 기업보다는 기업오너에 대한 믿음이 덜 한 것 같다. 기업과 거래하는, 경쟁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라. 여기에 최근들어선 ’철없는’ 2,3세들이 골목상권까지 넘보고 있다. 그래선 안된다. 소설에 보면 재벌에 비판적이었던 재야언론인 주채원이 결국 회장의 변화된 본심을 알고 절필 선언을 하고, 이 회장의 임종을 끝까지 지키며 우는 장면이 나온다. 계층 간 화합의 가능성까지 얘기했다. 소설의 이런 부분도 잘 읽어주길 바란다.
- 참여정부 때 국무조정실장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기업관을 따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정색을 하며) 아니다. 나는 98년에 정부를 떠났다. 민간생활한 지 벌써 15년도 넘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1년간 국무조정실장을 하고 거래소 이사장을 3년 했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인이었다. 작년 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을 보며 많이 생각했다. 후진국에선 타도 대상이 독재권력인데, 선진국에선 기업권력이 되가는 것 같다. 실제 월가 시위도 그렇고.... 편법 대물림 의혹 등도 많은데 우리 재벌들도 조심해야 겠구나 생각했다.
- 최근 정치권의 기업정책은 어떻게 보나. 출자총액제한제나 공기업 민영화, 초과이익공유제 등등...
▶세세한 정부 정책은 잘 모른다. 그러나 국민소득 1000달러 때와 2만 달러 때는 정책 방향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과거 잣대로 얘기해선 안된다. 과거에는 효율과 경쟁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에 더해 형평과 나눔, 배려가 조금씩 더 강조되고 있다. 이것이 바람직한, 따뜻한 공정사회이다. 경쟁에서 뒤질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도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과거처럼 연 10% 씩 성장할 순 없다. 성장 속도가 낮아질 수 밖에 없지만, 형평과 분배의 비중은 키워야 한다. 성장이냐 분배냐 논란도 이젠 무의미하다. 형평과 분배 부분을 조금씩 높여갈 수 밖에 없다. 어느 사회건 발전할 수록 조금씩 왼쪽으로 가는 것 아닌가.
이영탁 이사장의 다른 책 ‘미래와 세상(2010)’의 서문에 이 구절이 나온다. ‘Don’t fight with the old. Create the new. Then, the new will kill the old.(과거와 싸우지 말라. 미래를 만들어라. 그러면 그 미래가 과거를 정리해 줄 것이다.)’ 그 역시 재벌들이 불편한 과거 족쇄에 묶여 더 편협해지기 보다는, 99%를 위해 도움을 실천하는 열린 마음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듯 했다.
<조진래 선임기자> /jjr@heraldm.com <사진=안훈 기자> /rosedal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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