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8회> 모든 길은 하나로! (2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신체 포기각서란 말의 뜻을 알고 나면 얼마나 무서운 뜻인지…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임을 곧 알게 된다. 더구나 쭉쭉빵빵 새파란 처녀와 결부된 신체 포기각서란 말에는 야릇한 이중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신체 포기각서를 쓰겠다고? 한솜이가?’
그러나 토사구팽! 사냥철이 끝난 이후의 사냥개 신세로 전락한 한승우에게는 실로 구미 당기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유한솜의 신체를 담보로 잡는 데에 들어가는 돈이 3,000만원이라고? 만만치 않은 금액이기도 했으나 유민 제련그룹의 외동딸을 차지할 수 있는 대가로는 결코 크지 않은 액수였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한승우는 호텔 센트로 리셉션 옆에 딸려있는 비즈니스 룸으로 찾아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성능 좋은 컴퓨터를 오랜 시간 동안 쓸 수 있었을 뿐더러 각종 금융 및 비즈니스 자료들을 검색할 수 있었다.
“헬프 유?”
비즈니스 룸 담당 여직원이 토막 난 인사말로 그를 맞았다. 하긴 현지 시각으로 밤 11시가 넘었으니 졸리기도 하고 매사 귀찮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는 인사에 답할 겨를도 없이 VIP용 개인 컴퓨터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인터넷 전화를 연결시켰다. 마음이 급한 까닭이었다. 요하네스버그와 서울과는 7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곧 서울의 은행업무가 마감될 시각이었으므로.
“안녕하세요? 고객 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랜 만에 낭랑한 서울 아가씨의 음성을 들으니 한결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밤 11시를 넘긴 야심한 시각에 듣는 외국 여인의 목소리와는 생동감부터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급하기만 했다.
“대출계 좀 부탁합니다.”
“대출 담당자 말씀이십니까, 고객님?”
“아니 아니, 대출 담당자가 아니고… 법인사업부 윤 대리 부탁해요.”
“윤호방 대리 말씀이십니까, 고객님?”
친절한 인사도 마음이 바쁠 때엔 짜증나는 법, 그는 말대꾸 좀 그만하고 어서 윤호방 대리나 바꾸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보이지 않는 먼 곳이었지만 벌레 씹은 표정으로 수화기를 윤 대리에게 건네주는 그 여직원의 모습을 충분히 직감할 수 있었으니…
“뭐라고요? 유민 제련그룹의 전략기획실장이시라고요?”
“그렇다니까요? 지난달에도 세 차례나 통화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용건 때문에 그러십니까?”
“개인자격으로 급히 3,000만 원을 대출받으려고 합니다만.”
“아, 개인자격으로요… 그러시면 지난 1년간의 소득증명서 한 통, 재직증명서 한 통을 먼저 보내주시면 대출심사를 거쳐서…”
“이봐요, 내가 누군 줄 몰라요? 당신네 은행과 고정거래를 하고 있는 유민 제련그룹 전략기획실장이라니까요?”
“글쎄, 잘 알고는 있습니다만… 얼마 전에 유민 그룹 비서실장께서 다녀가셨는데요, 회사 조직이 바뀌고 큰 폭으로 인사이동이 이루어졌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요? 내가 전략기획실장이 맞다니까요?”
한승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달에만 세 차례나 통화했던 주거래은행 법인대출 담당자의 목소리에서 왠지 불길한 낌새가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4000만원 낼 세금을 1억 넘게 물다니…‘상속세 0원’이라도 꼭 신고해야 하는 이유 [이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news-p.v1.20260903.e72e37cbc9ac475abd6197c15b096a38_T1.png?type=h&h=240)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