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9회> 사랑을 위한 의식 (2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평양골프장 앞에서 거성그룹이 스피드 쇼크를 주최했다는 소문을 들은 이후로 신희영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차피 재벌이 발 벗고 나섰으니 온 세상이 떠들썩해질 만한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 예견했지만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져 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호성이가 북한 땅에 머물고 있는 게 확실하단 말이지요?”
“대답하기도 면목 없지만… 확실해요, 신 여사.”
“강유리 선수도 함께 갔다고 했지요?”
“그… 그렇다니까요.”
신희영은 눈을 독사처럼 치켜뜬 채 물었고, 아무런 죄도 없는 강준호는 천하의 죄인이 된 양 고개를 숙인 채 더듬더듬 대답하는 중이었다.
“좋아요, 그까짓 것들이 배신을 때린다고 주눅 들 내가 아니지. 그런데… 우리 한솜이 년이 휠체어 탄 노인을 따라서 중국으로 갔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믿을 수 없어요. 어쩌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요?”
“으휴! 사랑은 염라대왕도 막을 수 없다더니… 한솜 아가씨가 하필이면 거성그룹의 경주차 운전수를 좋아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시끄러워요. 사랑은 무슨 썩을 놈의 사랑!”
드디어 신희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주먹으로 제 가슴을 펑펑 두드리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열불이 타오른다는 신호였다.
하긴… 아무리 세상을 호령하던 여걸이라 하더라도 동시패션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말았으니 가슴에 대못이 박혔겠지. 어쩌면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처럼 가슴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강준호는 달랐다. 그는 진작부터 마음속으로부터 스멀스멀 배어나오는 기쁨에 겨워 있었다. 오히려 그 기쁨을 꼭꼭 숨기느라 애를 먹을 지경이었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대략 상황을 정리해보면… 두 사람의 심정을 곧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신희영의 마음상태는 이랬다.
첫째, 신희영이 제 목숨보다도 귀히 여기던 아들, 유호성은 어느 날 갑자기 귀신에게라도 홀린 듯 강유리를 따라 북한에서 열리는 골프대회에 따라 나섰다. 거기까지는 그럭저럭 참을 만 했는데, 뭐? 거성그룹의 꼬임에 넘어가서 또다시 자동차를 몰기로 했다고?
둘째, 그나마 제 편인 줄 알았던 유한솜은 한 술 더 떠서 아예 원수가문의 아들을 따라 중국으로 도망갔다고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뭐가 어째? 원수가문 아들의 부탁에 따라 반신불수 된 노인의 휠체어를 밀고 있다고?
끝으로 강유리 이 년! 온갖 정성을 바쳐서 이름 깨나 얻은 골프선수로 키워놓았더니… 뭐가 어쩌고 어째? 거성그룹의 로고를 온 몸에 붙이고 평양에서 골프를 치고 있어?
하지만… 신희영의 불행은 곧 강준호의 행복이었다. 어차피 남은 여생동안 유민 회장과 그 식구들을 해코지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는데, 느닷없이 거성그룹의 재벌이 등장해서 그 숙제를 대신 해주는 꼴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그러니 룰루랄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터지는 사건들이 흥미진진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 장장 4,400km를 죽도록 달려야 하는 경기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대략 400km라고 보면 그 열 배가 넘는 거리!
중국 상하이 인근, 뜨거운 바닷물을 품안에 끼고 있는 항저우만에서부터 중국의 곡창지대인 우한을 지나 산악을 거슬러 시안까지 들어가는 코스! 그리고 황토고원을 지나 사방 천지에 모래와 바람밖에 없는 고비사막을 넘어 몽골에 이르는 코스! 게다가 만주를 거쳐 북한을 통과하고 일본까지 넘나드는 5개국 관통 랠리경기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 험한 곳에 유호성이 제 발로 찾아간다니… 강준호는 기쁨을 참기 어려웠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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