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사건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은 관련자들의 ‘폭로’에 의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언론에 재조명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개인적 원한이든 역사적 사명감이든 이 이유를 불문하고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온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폭로가 갖는 일정 부분 긍정적 역할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양 이병 폭로사건=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1990년 입대해 보안사령부에서 근무한 윤석양 이병(당시 25세). 1990년 8월 과거 학생운동권에 함께 몸담았던 동지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프락치 역할을 강요받고 괴로워했다. 1990년 10월4일 윤 이병은 민간인 1303명의 불법사찰 내용이 담긴 디스켓을 들고 탈영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 사무국장 김동원 목사의 도움으로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활동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윤 이병이 공개한 목록에는 정치ㆍ종교ㆍ노동 등 각계 주요 인사 및 민간인 등을 사찰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들까지 포함돼 있어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민심은 동요하면서 연일 규탄성명이 나오고 항의집회가 잇달았다. 이 사건으로 당시 정권 보위에 동원됐던 보안사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아 관련 장성들이 퇴진했다.

보안사의 조직과 기능이 재편되고 ‘보안사’라는 이름도 ‘기무사령부’로 바뀌었다. 악명 높던 서울 서빙고의 대공분실도 폐쇄됐다. 정작 폭로 사건의 주인공 윤 이병은 ‘군무이탈죄’로 2년여에 걸친 도피생활 끝에 1992년 9월 검거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박종철 고문치사 폭로=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박 씨는 1987년 1월 13일 자정께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된다. 공안 당국은 박종철에게 운동권 선배인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 씨가 대답하지 않자 경찰은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했고, 박 씨는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경찰은 14일 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화장할 계획이었으나, 검찰은 사체보존명령을 내렸다.

부검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 황적준 박사, 한양대 박동호 교수가 경찰의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11월17일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1년 뒤 부검과정에서 받았던 경찰의 회유와 협박을 받은 내용을 적은 일기장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구속됐다. 전기고문과 물고문에 의한 살인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된 경찰은 서둘러 조한경 등 2명이 박 씨를 물고문해 살해했다고 축소 은폐해 자료를 내고 가족 허락도 없이 벽제 화장터에서 시신을 화장해 버리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당시 전민련 상임의장이였던 이부영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노력으로 1987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도미사 도중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음을 폭로했다. 대공경찰의 대부라는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의 주도 아래 모두 5명이 가담한 고문치사사건을 단 2명만이 고문에 가담한 것으로 꾸미고, 총대를 멘 2명에게는 거액의 돈을 전달됐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이후 6월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노태우(전대통령)
노태우(전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폭로=1993년 노 대통령이 재벌로부터 돈을 받아 비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으로만 끝날 뻔 했던 대통령 비자금 설은 1995년 당시 민주당 국회이었던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사실로 드러났다. 1995년 10월 19일 박계동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신한은행 계좌 조회표 한장을 들고 나타났다. 박 의원은 조회표를 보여주며, “신한은행 서소문 지점에 우일양행 명의로 128억2700여만원이 예치돼 있다. 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인 1993년 1월 말까지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 예치했던 4000억원의 비자금 중 일부로, 이원조(전 국회의원) 씨가 시중은행 영업담당 상무를 시켜 각 시중은행에 100억원씩 40개 계좌로 나누어 분산 예치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폭로했다. 당시 노 전대통령은 “박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며 비자금 조성 사실을 부인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던 이현우씨는 검찰에 자진 출두해 “차명계좌에 입금돼 있는 돈은 노 전대통령이 재임중 조성해 사용하다 남은 돈”이라고 말한다. 자금 조성 사실을 부인하던 노 전대통령은 대국민 성명을 발표 하며 “대통령 재임중에 기업체로부터 약 5000억원을 받아 쓰고 1700억원 가량 남아 있다”고 시인했다. 국민 성명 바로 다음날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소환됐으며, 노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준 삼성, 현대 등 34개의 재벌총수들도 검찰 소환돼 조사를 받는다. 검찰 조사 결과 재벌총수들은 기업에 대한 특혜 댓가로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중에 30억에서 250억원의 뇌물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16일 대기업 총수 등 40여명으로부터 46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수감된 후 무기징역을 구형 받는다. 1997년 4월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 받는다. 1997년 12월14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특별 사면했다.

▶장자연 연예인 성(性)상납 폭로=2009년 당시 인기몰이 중이던 TV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 중이던 배우 장자연(당시 30세) 씨는 그해 3월 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소재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사건 초기에 장 씨의 자살 이유를 우울증 등으로 결론 내려 무명 연예인의 자살 사건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장 씨의 전 매니저에 의해 장 씨가 생전에 작성한 자필문건이 공개됐다. 이른바 재계 및 언론계 유명인사들이 연루된 ‘연예인 성상납’ 파문으로 번졌다.

장자연(배우/모델)
온9일오전11시/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폭로사건
장자연(배우/모델) 온9일오전11시/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폭로사건

문건에는 언론사 대표, 방송사PD, 기업체 대표 등 유명인사들의 실명이 쓰여있었다. 장 씨는 해당 문건에서 소속사 대표에 의해 매일 성상납과 술접대, 골프접대 등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문건에는 ‘모 감독이 골프치러 갈 때 함께 동행해 술과 골프 접대를 요구받았다. 룸살롱에서는 술접대를 시켰다’, ‘접대해야 할 상대에게 잠자리까지 강요 받았다’, ‘방안에 갇혀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맞으며 온갖 협박과 욕설에 시달렸다’고 쓰여있었다. 여론도 들끓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들이 집회를 열며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결국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정치적 의혹만 난무할 뿐 제대로 된 수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검찰은 수사대상자 20명 중 소속사 대표 김모씨를 비롯한 7명만을 기소했다. 파문은 언론계와 정치계로도 번졌다. 일부 국회의원에 의해 유서가 공개되면서 모 언론사 사주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다. 지난해 3월께 모 방송사가 장 씨가 생전에 직접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를 공개하면서 장자연 사건은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소문만 무성할 뿐 장 씨에게 술접대 및 성상납을 강요했던 인물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았으며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